3/25/16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여섯째 날


🍀제6일 (성금요일): 십자가에 달리시고 운명하심 


[마태복음 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될 만큼 간절하게 기도하셨지만, 제자들은 피곤에 지쳐 잠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도는 깨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으려면, 자신의 삶이 위기 속에 있음을 직시하면서 오직 기도만으로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전 9시경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12시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으며, 하늘은 빛을 잃어버리고 바위는 터지고 땅은 진동했다고 합니다. 


오후 3시경 예수님은 돌아가셨고,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며 하나님은 하늘의 징조와 땅의 징조, 성전의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보여주십니다. 


[누가복음 23:22~23]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도 찾을 수 없었지만 놓아주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 질까 봐 두려워 십자가 사형판결을 내렸습니다. 


로마의 사형 방법 중 가장 극형은 십자가형입니다. 너무 저주스럽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로마 속국민에게만 적용하고 본국민에게는 절대 적용하지 않았던 극형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장소는 ‘해골이라는 곳’, 히브리어로는 ‘골고다’이며 라틴어로는 ‘갈보리’라고 합니다. 갈보리 산은 나무가 자라지 않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바위투성이의 민둥산입니다. 


그 황폐한 언덕 위에서 예수님은 2명의 죄수 사이에 매달렸으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숨이 막히고 고통이 심해지는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7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가상칠언"이라 합니다


1.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온갖 모욕과 수치,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며 채찍으로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6시간 동안 고통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극심한 고통과 모욕 속에서도 예수님은 제일 먼저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너무나 잔인하게 큰 고통을 주는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혹시라도 큰 벌을 내리실까 봐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의 하나님은 지금 당장에라도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내려오게 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너무 컸고 예수님의 죽음 없이는 우리의 죄가 사해지지 않기에..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이 고통으로 절규하는 소리를 외면하셔야만 했습니다. 


아무 죄와 흠이 없는 순결한 분이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리가 당해야 하는 고통과 수치를 대신 당하셨습니다.   


2.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양쪽에 있던 두 죄인 중 한 명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렇다면 당신과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난하며 조롱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강도가 “이놈아!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너와 나는 죄를 짓고 거기에 마땅한 형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분에게 해당되는 것은 선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 고통 중에 이 사람을 보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모욕했고, 다른 사람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구원을 요청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 한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3. [요한복음 19:26, 28]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예수님은 마리아를 ‘어머니’가 아닌 ‘여자여’라는 호칭으로 부릅니다. 이것은 마리아를 육신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공적인 위치 곧, 세상 죄를 지고 있는 하나님이 어린 양, 구세주로서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비록 육신적으로 예수를 낳았다 할지라도 죄인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제는 아들 예수가 아니라 대속의 주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독생자까지 주신 그 크신 사랑, 십자가에 자신을 바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인간적인 아픔을 넘어 이제는 새로운 사랑, 하나님 사랑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제자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십자가에 붙잡히던 날 밤 요한을 비롯하여 제자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누구보다 예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제자 요한은 이제 다시 돌아와 가슴을 졸이며 십자가 아래서 자책하고 있습니다. 


실패한 요한을 향해 주님은 동정하는 눈빛으로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미 주님은 요한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네가 지금 십자가 아래 있는 것으로 나는 이미 너의 실패와 잘못을 다 용서하였다. 나는 너를 안다. 너의 연약함도, 나를 향한 사랑도 다 안다. 너를 사랑한다 누가 뭐라 해도 너를 믿는다.”


4. [마가복음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여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나니”라고 외치셨습니다.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부르짖음입니다. 


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 죄 값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나약한 인간으로 겪는 고통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그 고통을 겪으시면서 까지 우리들의 죄를 사하시고 천국으로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을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5. [요한복음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주님이 목마르신 것은 우리들의 목마른 인생을 대신 하신 것입니다. 목마른 인생인 우리가 주님께 나가면 생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심령이 목말라 할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6.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모든 사역이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를 선언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7. [누가복음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마태복음 27:51,54]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목격한 백부장과 군인들은 고백합니다. 


이 사람…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이 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셨구나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에 이제는 언제든지 누구든지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6년 성금요예배에 드려지는 고난주간 칸타타와 성찬식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우리 모두 관객이 아닌 진정한 예배자로 갈보리 십자가의 주임을 묵상하며 십자가상의 칠언과 함께 하세요. 


3월25일(금) 오후 7시30분 

사랑의교회 본당

할렐루야 성가대&오케스트라 


♣ 저를 위하여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피 값으로 구원해주신 그 감격을 잊지 않게 하시고, 저를 저보다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거룩한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처럼 저도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한 영혼이라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도록 제 안에 목자의 심정과 영혼구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희생된 피 값이 헛되지 않도록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게 하소서.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 영광과 사랑의 물결이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닿는 곳마다 치유와 회복의 능력으로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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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16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다섯째 날


🍀제5일(목요일):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


[요한복음 13:4~5]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잡히시기 전날인 바로 오늘, 주님은 희생과 섬김, 사랑의 약속을 위해 제자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셨고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한복음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곧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고, 가롯 유다가 주님을 팔아 넘길 것을 아셨음에도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섬김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고별사를 남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마태복음 26:26~28]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어서 떡과 포도주의 의미를 설명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신이 드릴 희생 제사, 그리고 자신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한 자들이 받을 영적 유익을 시각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하는 신비한 연합이며,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살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4:36, 41~42]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미 하나님의 계획은 확정되었지만, 처참한 고통을 몸소 겪으셔야 했던 예수님은 인간의 성정을 가지셨기에 슬픔과 번민속에 기도하십니다. 고통의 잔이 그냥 지나가길 간구하면서도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길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이 그 잔을 마시지 않고는 안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확고하다면 복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십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십자가 고통을 대신 지어야 함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그 뜻을 따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나를 위한 희생이었고, 예수님 피는 나를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희생이 없는 섬김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약속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온전한 희생은 진정한 사랑의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내 안에 주를 닮은 온전한 희생과 진정한 사랑이 있는지, 주님의 살과 피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주님과 나는 어떤 관계인지, 나는 주님께 딱 붙어 있는지 아님 멀찍이 떨어져 있는지ᆢ내가 주님께 드릴 고백은 무엇인지… 그토록 피하길 원했던 고난의 길을 담대히 가시는 예수님, 쓴 잔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셨던 예수님의 헌신을 생각하며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나 자신의 삶을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헌신과 섬김을 기억하며 오늘은 배우자와 아이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기쁨으로 실천해보세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세족식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이기심과 죄, 욕심과 아집과 자존심을 버리게 하시고, 주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제 삶 속에서 매일매일 실천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다시 무장되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 만이 해답이며 십자가 사랑만이 방법이고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


성령을 물붓듯 부어주사 응답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시고, 집중적인 기도의 포문을 열게 하소서.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님을 향한 시선이 더욱 뚜렷해지게 하시고,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비상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혀 쓰임받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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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16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넷째 날


🍀제4일(수요일) : 한 여인의 헌신


[마태복음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한 여인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을 위해 정성껏 사용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진정 사랑했기에 그녀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삼백 데나리온의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곧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아셨고 장례를 준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기에… 너희를 살리는 길은 이 길뿐이기에…… 너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기에… 이 길이 아니면 너희가 죽게 되기에….” 주님은 한 여인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면서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좋았을 것이라며 쓸데없는 낭비이고 가치없는 행동이라고 그녀를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칭찬하시고 온 세상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녀의 감사행위로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녀는 누구일까요? 


[요한복음 12:1~3]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그녀는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로 오라버니를 살려 주신 예수님에게 대한 감사의 뜻을 표현하고 싶어서 잔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잔치 자리에서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아마도 잔치를 베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그 행동은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은 데서 비롯된 감사의 행동이요 참된 헌신이었습니다. 


요즘은 은혜를 잊어버린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냥 우연일 뿐,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생긴 당연한 결과라며 은혜도 잊고 감사도 잊고 오히려 불평하고 원망하며 지내곤 합니다. 


참된 헌신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헌신은 사랑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온전한 사랑은 많은 용서를 받았기에 가능합니다. 죄사함 받은 것이 많은 자는 많이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적의 때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지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에 이미 아셨기에 죽기 전 마리아의 나드 향유를 부어드림에 기뻐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도 감사를 표현해야 할 때, 사과를 해야 할 때, 용서를 구해야 할 때.. 그 때를 놓쳐서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즉시 순종하고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마리아는 계산을 초월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비싼 나드 향유 옥합을 몽땅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한두 방울만 뿌려도 온 방안에 향기가 가득할 터인데 몽땅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주님의 뜻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계산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산을 초월한, 지각에 뛰어난 축복을 받습니다. 


마리아는 사랑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지만 복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헌금하고 감사한다면 놀부가 제비 다리를 꺾고 싸매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리아는 받은바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라고 했습니다. 감사에 사랑이 어우러질 때 훌륭한 감사행위가 됩니다. 


마리아는 겸손하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렸다는 것은 자기를 끝까지 낮추고 겸손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많은 헌금을 드렸을지라도 그것을 기억하거나 생색내며 어떤 결과를 기대하면서 교만한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최선을 다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힘을 다하여 남김없이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정성을 보시는 분입니다. 물질의 양이 많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질의 양은 적어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다 감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드릴 때는 너무나 인색하게 계산을 하며 드립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연이거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었고 주님도 이미 아셨습니다. 


하늘이 아무리 별을 좋아해도 자신을 별로 채우지 않으며, 별 역시도 그곳에서 자기만 빛나려고 떼쓰지 않습니다. 밤하늘에 조금의 여백도 없이 별들로만 가득 채워진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입니다.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비워내는 것ᆢ


이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빛나는 인생입니다. 


제자의 삶이란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비워내기를 통해 결국 마지막 것까지 온전히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이 모습이 두려움을 지나고 고난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에 헌신과 부흥의 별이 되어 빛나게 될 것입니다.


고난주간 네번째 날인 오늘.. 나를 위해 가장 소중한 목숨을 바치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내가 주님을 위해 보답할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마리아가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전 재산에 해당하는 향유를 주님께 드렸듯이 온전한 헌신과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즉각적인 순종과 실천, 계산을 초월한 사랑과 감사, 겸손함으로 온 맘과 생명과 뜻을 다하여 존귀하신 주님만을 사랑하고, 섬김과 헌신을 실천하게 하소서.


나는 다르다고 자만했던 우월 의식과 자부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위해 한결같이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고난 주간 주님의 고난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며 십자가의 의미를 절실히 깨닫고, 우리에게 주신 소명의식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의 보혈과 능력으로 고난을 당당히 이겨내는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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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16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셋째 날


제3일 (3/22/16, 화요일): 논쟁과 비유의 날


[마가복음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형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잇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차례로 아내로 취했으나 다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부활 시에는 이 여자가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유대 사회에서 귀족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 직분을 독점했으며, 최고 종교의결기관인 산헤드린에도 많이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또 로마에 협조하면서 정치적으로도 혜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삼고 있었기에 사두개인들은 큰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했으나, 천사들이나 사람들의 영혼은 부인했습니다.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고 믿었으므로 자연히 육신의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은 오직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했고, 나머지 예언서들은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어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29~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때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22:33~34]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그러자 사두개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종교들을 보면, 죽은 자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인간이지 신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은 곧 “산 자의 하나님”을 의미하며, 이미 4000년 전에 죽어 무덤에 장사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천국에 살아있음을 의미합니다. 


말씀 속에 나오는 ‘죽은 자’ 혹은 ‘산 자’는 육신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를 말합니다. 


구원받기 전의 인간의 실상은 그 영이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입니다.


산 자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이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모든 영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인류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되기 전 예수님은 화요일에 집중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화요일 오후 감람산 위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보며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가르치시고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31~32]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태복음 21:45~46]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어느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6~40]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 즉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는 것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마가복음 12:43~44]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가난한 가운데 자기 모든 것을 헌금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은 능력이나 지위, 재산, 헌금의 금액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과부처럼 작지만 말없이 어둠을 밝힐 등불과도 같은 사람을 기뻐하시며, 내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자리잡고 있는지… 물질적인 것, 세상적인 것으로 채워져있진 않은지 오늘 하루 묵상해봅시다. 


장엄한 폭포는 물이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한 절벽과 만나는 순간 만들어집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곳에 있던 물줄기들이 모여 폭포를 이루고 다시금 주변에 푸르름을 피어나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도 그냥 떨어짐이 아닌 폭포가 되어 나와 내 이웃, 내 가정, 내 교회를 살리는 그런 십자가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절벽의 평행선과 폭포의 물줄기가 만나 십자가가 만들어지듯, 회개와 내려놓음이 만나는 그 자리에 십자가가 나타나고 우리 인생의 문제를 뛰어넘는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상황과 모습이 어떠하든, 절벽 끝에 서 있는 순간, 절망이 아닌 십자가의 회복을 통해 측량할 수 없는 폭포수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며 고난의 길에 믿음으로 동참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로 향하시는 예수님이 강조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항상 제 삶 속에서 실천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내 안의 더러움을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주셔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영혼히 멸망하지 않는 영생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집중하게 하시어 악을 악으로 이기려하지 않고 말씀의 지혜로 세상을 이기게 하소서. 


내 영혼에 은혜의 대청소가 있게 하시고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어 예수님의 고난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이 베푸실 놀라운 응답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향한 꿈을 회복하여 어떤 광야에서도 돌파할 수 있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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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16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첫째 날 & 둘째 날 


[이사야 53:1]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어제는 ‘종려 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의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이며 고난주간의 시작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의 고난의 시작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므로 정결하게 일주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하며, 고난주간은 부활절 전 한 주간, 종려 주일은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주일, 세족 목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신 목요일, 성금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금요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훈련의 시간이며, 우리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 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깊은 명상과 경건의 생활을 통해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달라져도 예수님이 주신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가시고 걸어간 그 길, 2천년전 예수님이 가신 마지막 7일간의 고난의 여정을 이번 주 함께 걸어가고자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7일간의 행적이 갈보리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면 십자가의 능력과 회복의 역사가 풍성하게 우리에게 임할 것 입니다. 


길이 끝나는 것 같은 곳에 새로운 길이 열려짐을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 지금 다시 걸어갑니다. 


🐎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하는 첫째 날 


제1일 (3/20/16, 일요일) :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심. 


[요한복음 12:13~15]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마태복음 21: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 수많은 유대인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고, 극진히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목격했기에 예수님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예수님이 오셨는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고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500년 전에 씌여진 스가랴에서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입니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은 온 땅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그 어떤 왕보다 크신 분이셨고 수많은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찮고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겸손한 나귀를 타고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나귀는 사람이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새끼였습니다. 이것은 거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죄와는 상관없는 거룩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또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거룩해야 함을,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의 상징으로 환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일국의 왕이 입성할 때에는 적어도 병거를 타고 입성하지만 예수님은 하찮은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겸손의 왕이요, 섬김의 왕이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구원해주실 구세주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주실 만유의 구세주가 아니라, 그들을 로마의 정부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를 뛰어넘어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창과 칼을 휘두르며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기 위해 고난 받고 결국 죽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제2일(3/21/16, 월요일): 성전을 청결케 하심. 


[마가복음 11:15~18]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추방하시면서 그들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성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찬양과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성전을 자기의 이익을 채우는 목적과 수단으로 전락시켜 제사를 위한 희생제물을 팔고, 과도한 차익을 남기며 환전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상도의 소굴로 전락한 현실을 간과하지 않으셨고 예수님의 이 행동의 결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원성을 사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아셨지만 두려움없이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중요하게 여기셨는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 말하고 또 교회가 성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나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채찍을 들지 않으실지.. 지금 예수님께서 나를 보신다면 어떻게 평가하실지 묵상해봅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성전의 모습을 회복하는 고난주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참조: 날마다 솟는 샘물)


♣하나님 아버지, 이번 고난주간이 매년 돌아오는 의례적 형식적 고난주간이 아니라 진정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생각하고 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고난주간을 보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과 거룩을 본받게 하시고, 교만, 비판, 화, 미움, 질투, 거짓, 핑계, 이기심, 두려움을 금식하게 하시고, 오직 겸손, 칭찬, 온유함, 사랑, 진리, 감사, 봉사, 믿음, 기쁨의 만찬을 누리게 하소서.


겸손과 섬김의 예수님의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을 따라가는 참제자가 되게 하시고, 날마다 저의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가게 하소서. 


고난주간 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그 고난에 담긴 저를 향한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영적 승리를 위해 기도에 집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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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스스로 죽음을 향해 가시는 분 

말씀: 요한복음 18장 3~9절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음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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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경비병들은 유다를 앞세워 예수님을 잡으러 나왔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를 찾는 자들에게 "내가 그니라"라고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에고 에이미')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가리키는 말로(요 8:24, 28) 자신이 나사렛 사람인 예수이면서 동시에 모든 권세를 가진 전능자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분의 말 한마디에 그분의 권위가 드러났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던 사람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집니다. 그들은 그 권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감히 예수님을 잡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잡아가는 것을 허락하셨고, 그때야 비로소 그들이 예수님을 잡아갑니다. 예수님은 폭력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향해 가신 분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갈 수 없고 두려워하는 길을 자기 생명을 내어주시기 위해 당당히 걸어가셨습니다.


고난 주간을 맞으며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도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자신의 죽음으로써만 성취하실 수 있는 구원의 길을 가기 위해 모든 열심을 다하신 우리 주님을 깊이 묵상하기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이 걸어가신 순종과 겸손과 섬김의 길을 온전히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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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 

1. 고난주간을 맞아, 모든 권세를 가진 전능자이심에도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으신 구원자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게 하소서.

2. 나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겸손과 섬김의 길을 걷게 하소서.

3. 나를 끝까지 지켜주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언제나 주님과 같은 편에 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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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by. Saeronam Church 2016 묵상 자료 

3/18/16  은상가은 


[시편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신명기 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마태복음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어느 목사님이 10여년 전 50대 초반 선교회원 20명과 함께 물이 맑은 서울 근교 계곡으로 야유회를 갔습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교회버스 안에서 야유회를 준비한 선교회장 부부의 말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점심식사의 가장 중요한 메뉴인 불고기 재료를 교회식당에 빠뜨리고 온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머지 사람들은 야유회 분위기가 나빠질 것을 우려하여 불고기가 없어도 충분하다는 말로 위로하였습니다. 


야유회 장소는 경관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선교회원들의 표정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불고기만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커다란 바위에 둘러앉아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이었습니다. 


한 소년이 바친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을 나누며 불고기가 없더라도 기쁨의 오병이어가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설교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쳤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앞에 찾아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어느 교회에서 왔느냐” 고 물었습니다. 


답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신들은 모교회에서 100여명이 야유회를 왔는데 너무 많은 고기를 가져와서 나눠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불고기를 놓고 왔는데 그분들은 소고기와 돼지고기까지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6:30~31]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비록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정성껏 준비한 그 마음을 헤아리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뜻밖의 방식으로 그 문제를 풀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길은 보여주시기 전까지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이요, 히든 플랜(Hidden Plan)인 셈입니다. 그래서 히든 플랜을 만날 때의 기쁨은 참으로 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을 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 예상치 못한 일들과 세상의 어려운 일들이 도처에 깔린 이 험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고 느끼는 것은 진정 기쁜 일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외적 필요와 내적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바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입니다.  


[고린도후서 8:7~ 9]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 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우리로 그 은혜 속에서 살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하시는 분 또한 성령이십니다. 


신학적으로 '은혜'라는 말은 '죄인으로서 아무런 자격도 없고 단지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말합니다. 


즉 은혜는 하나님의 관대함이 우리에게 임한 것이요 하나님이 값없이ᆢ 댓가 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큰 환란 가운데서 시련을 받으면서도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하고 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하게 살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1~2]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은상가은'이란 말이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채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평생에 걸쳐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내면의 능력, 순종의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시면 우리 안에 은혜가 넘쳐납니다. 


[요한복음 1:16~17]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그리스도인이란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향기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살고 계십니까?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며 참행복과 참만족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단 하루도 은헤가 없이는 살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상치 못한 광야길에서 저를 위하여 예비해주시고 공급해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매일매일 경험하게 하소서. 


그 어떤 세상적인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게 하시어 참행복과 참만족을 누리게 하소서.


매일매일 은혜를 먹고사는 은혜의 하루살이로 살게 하시고 은혜의 강물이 넘실거리는 축복의 근원되게 하소서. 


은혜 위에 영적 건축을 잘 감당하여 우리도 살고 한국교회도 살리는 은혜의 튼실한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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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6.25 사변 무렵에 어떤 선교사님이 서울에서 길을 가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내렸는데 다리 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소리 나는 쪽으로 내려 가 보니 한 어머니가 아기를 낳아 자기 옷을 벗어 아기를 감싸놓고는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다행히 아이는 살아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어머니는 산에 묻어주고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집에서 길렀습니다.

 

아이가 자라 열두 살쯤 되어 선교사를 통해서 자기가 누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선교사님, 우리 어머니 산소에 저 좀 데려 가 주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자신이 묻은 어머니의 산소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엎드려 “어머니, 그때 얼마나 추우셨어요? 지금보다 더 추우셨지요? 어머니, 저를 살리려다 추위에 얼어 돌아가셨군요, 얼마나 추우셨어요?” 하면서 옷을 하나하나 벗어서 무덤에 덮어드렸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아프셨을까? 피 흘리시면서 얼마나 고통당하셨을까? 나를 살리려고, 나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얼마나 많은 모욕과 조롱을 참으셨을까?

 

십자가는 전시용품이나 장식품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의 무덤입니다.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내 앞에 계신 주님이 나를 살리려고 귀한 생명을 버려주신 주님의 무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랑에 감동해서 늘 감사의 삶을 살고 불평하지 않는 것도 주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늘 기뻐하는 것도 소망을 갖는 것도 주님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편 118: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수 없으며 주님의 은혜를 먹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그 은혜를 잊고 불평불만하며 감사를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영국 속담에 "강을 건너면 하나님은 잊혀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위험 중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고 기도하다 그의 도움을 받아 위험을 극복하고 나면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 일이 아주 급할 때는 통사정하며 매달리다가 그 일을 무사히 다 마치고 나면 모른 체하고 지낸다는 말입니다. 


수능과 같은 큰 시험이나 취직, 승진, 수술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는 절실히 기도하고 매달리다가 잘 해결되고 나면 내 능력과 나의 노력으로 합격했다고 자만하며 감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가장 아끼는 독생자를 주셨고  주신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아주 작은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우리의 대답은 "싫어! 이건 내꺼야. 내가 열심히 해서 얻은 거야, 주기 아까워" 라고 말하곤 합니다.  

 

영국에 유명한 트렌취라는 감독이 있었는데 그는 특별히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하여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그의 책에서 그는 "모든 은혜 가운데 감사할 줄 아는 은혜는 제일 드문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은혜는 곧 잊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작은 은혜는 잊어버리기 쉽지만 큰 은혜는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큰 은혜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잊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방에 전기가 나가면 방안이 캄캄해집니다. 촛불 하나를 켜 놓아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아침 온 누리를 밝히는 햇빛을 주시는데 아침마다 밝은 햇빛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분이 몇 분이나 될까요?

 

코를 꼭 잡고 입을 열지 않은 채 얼마쯤 숨을 쉬지 않을 수 있는지 참아보십시오. 30초를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숨을 쉬지 않고 참아보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숨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갑자기 호흡이 어려워졌을 때 어떤 분이 산소를 한 통 보내면서 그 호흡하는 것을 도와주었다면 아마 그 은혜를 오래오래 기억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지구에 넉넉한 공기를 주어서 불편 없이 호흡하면서 숨쉴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분이 몇분이나 될까요? 

 

뛰는 맥박을 손가락 끝으로 느껴보십시오. 심장의 박동으로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 끝까지 피가 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날마다 무수히 신비롭게 박동하고 있는 심장을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큰 은혜를 잊고 삽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일구고 있고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숨이 끊기지 않는 기적을 매일매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20초 정도만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십시오. 

 

오늘도 살아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지켜주세요. 

오늘 하루 즐겁게 웃으며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내 평생 감사이신 하나님 아버지, 구원의 은혜를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것인데 그 감사와 은혜를 모르고 내 것 인양 움켜지고 아까워하는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아쉬울 때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해결이 되고 나면 내 능력과 내 힘으로 해결된 양 하나님을 잊고 감사하지 않은 저를 회개합니다. 

항상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매일매일 무시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날이 되게 하소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욱 복되다는 말씀을 실천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해 작은 헌신을 드린 후 대가를 바라거나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게 하시고, 순수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린 기쁨만이 제 안에 가득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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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3/16/16  나의 아버지 하나님 


[갈라디아서 3:26~27]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재활병원에서 영적치료사로 사역하시는 김복남 전도사님의 책 “사랑하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사랑하라”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나는 자녀들 때문에 재혼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떠나고 나서야 남편의 소중함을 깨달았듯이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들을 키우는 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목욕탕에 보낼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혼자 목욕탕에 보내면 아들은 몸에 물만 묻히고 왔습니다.  


딸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아빠를 잃었습니다. ‘딸에게는 내가 있으니까 괜찮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울먹이며 제게 물었습니다. 


”엄마, 난 이 다음에 문제아가 되는 가야?”


제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담임 선생님이 가정환경조사서를 보시면서 ‘넌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구나. 결손가정의 아이네’라고 말씀하셨어. 이런 아이들은 문제아가 된다고 하셨어.. 내가 그렇게 되는 거야? 결손가정이라는 그 말이 난 듣기 싫어. 돈을 못 벌어도 아파도 엄마와 이혼했어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가정환경조사서에 아빤 칸을 채우고 싶어”


저는 딸아이를 꼭 끌어안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선물이었어.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네 아빠가 되어 주실 거야. 아빠를 부르고 싶거든 ‘하나님 아빠’라고 불러봐. 엄마도 외로우면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 그렇게 기도해.”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언제든지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돈이 없어 제 때 입히지도 잘 먹이지도 못했으며 학원에 보내는 건 꿈도 꾸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아이들을 지켜주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제가 집회 다니고 병원에서 환자들과 함께 보내느라 아이들을 챙기지 못했을 때도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세세하게 챙겨주셨습니다.  


교회 마당에서 하루 종일 놀던 그 아들은 미국과 일본에서 10년간 장학생으로 공부했고, 아버지가 하지 못했던 일본 선교를 대신하겠다며 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삿포로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책을 유난히 좋아했던 딸은 결손가정에 대한 상처가 있음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연출과에 들어가 지금은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을 죄에서 건져주실 구원자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특권을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6~7]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우리는 아무한테나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감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굉장한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자연스럽게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자체가 신기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분명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이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내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에서 어린 백조가 자신의 신분을 모르고 오리 새끼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구박을 받으며 힘들게 살았지만 나중에 자신이 백조인 것을 깨닫고 창공을 향해 날아갑니다. 


본래부터 백조였지만 자기 신분을 깨닫자 진정한 백조가 되었듯이, 우리도 하나님 자녀로서 신분 의식이 없으면 삶이 고달프고 힘들고 허전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으로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산다면 이 험한 세상을 담대하고 기쁘게 살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기에 비록 근심이 있고 부요치 못하여 가진 것이 적다할지라도, 항상 기뻐하며 다른 사람을 부요케하고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답게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 저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죄로 영원히 심판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저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모든 삶의 힘이 되시며 늘 곁에서 인도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찬양합니다. 


저와 늘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아버지를 깨닫고 늘 의식하며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삶, 저로 인해 아버지가 즐거워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모른 채 아직도 무거운 짐들을 혼자 지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합당한 시간에 합당한 방법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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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16 믿음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어느 목사님에게 고향 후배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대뜸 “형님, 저는 이제 교회를 다니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눈이 아파 하나님에게 일주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며 아침 금식도 하고 기도원에도 가서 눈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하였는데.. 그 눈이 일 주일 후에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그것 잘 됐네.. 이제 그만 교회에 나가게” 


그러자 후배가 태도를 바꾸면서 “아니 형님 왜 그러세요? 목사님이면서 왜 저를  붙잡지 않으세요?”라며 의외의 목사님 반응에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후배에게 다가가 차분하게 어느 부부 이야기를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한 여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했다네. 그런데 남편은 부인에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의처증이 있었지. 그 여자는 결혼하는 날부터 신혼이 아니라 감옥이었다네. 


남편은 회사에 나가서 5분마다 전화를 하여 부인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고,  부인은 마음 놓고 목욕도 할 수 없어 언제나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네. 급기야 의처증이 심한 남편은 부인을 믿지 못하여 출근하면서 대문을 잠그고 나갔지. 


남편과 같이 길을 걸어가다가 동네 아저씨를 만나 인사라도 하면 부인에게 남편이 “저 남자 몇 번 만났느냐?”고 따졌고, 약국에 들어가서 약사 아저씨를 쳐다보면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부인에게 “당신 그 남자에게 보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하며 쏘아 부쳤다네. 


자네라면 이런 배우자와 같이 살수 있겠는가?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주님과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라네. 


주님과 한번 결혼을 했으면 주님이 살아 계신 것에 대해 그리고 주님이 날 사랑하고 함께 하신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의심을 하면 안되지.  


기도해서 아픈 눈이 나으면 주님이 계시고 눈이 낫지 않으면 주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네. 


한번 주님을 믿었으면 눈이 낫든 낫지 않든지 관계없이 주님을 믿어야 정말 주님과 결혼한 사람이야.”  


고향 후배는 기도 응답이 안되었다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 자신의 연약한 믿음을 눈물로 회개하며 돌아갔습니다. 


[야고보서 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진정 사랑한다면 나의 기도의 응답과 관계없이 언제나 주님을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서 나의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나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가는데 눈이 좀 아프면 어떻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교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나아지지 않는 힘든 환경 때문이라고..

바라던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누구 누구 때문이라고...무엇무엇 때문이라고..


그러나 이것들은 충분한 이유가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사랑의 감동을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에 마음을 뺏겨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없거나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주님과 일대일의 진지한 교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설교)을 듣는 시간을 소홀히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환경)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가지,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기술, 우리의 인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우리의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남이 아니라 나 자신과 주님을 바라보며 진정한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시길 기도합니다. 


🌸(펌)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내 마음이 메마를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메마르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메마르고 차가운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불안할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불안하고 답답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외로울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버리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외롭고 허전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불평이 쌓일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불만스럽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쌓이는 불평과 불만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을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내 기쁨을 빼앗아 가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기쁨과 평화가 없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서 희망이 사라질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낙심시키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이 남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 믿음과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늘..


나는 내 마음 밭에 '믿음’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씨앗 하나를 떨어뜨려 봅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같이 저도 끝까지 주님만을 사랑하며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게 하소서. 


눈을 크게 뜨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게 하시고,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소서. 


미혹의 영에 사로잡히지 않게 늘 깨어있게 하시고, 사탕만 바라는 기복신앙으로 바지지 않게 하시고, 첫사랑을 회복하여 굳건한 믿음과 순진한 기쁨과 뜨거운 가슴이 회복되게 하소서.


첫사랑과 초심을 잊지 않고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순결한 삶을 통해 주님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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