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16  하나님의 자비의 법칙


[사무엘상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은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뿐이었습니다. 질투를 느낀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 했고 친구 요나단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다윗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람굴로 도망가자 그 소문을 듣고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400명이 되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8번쨰 아들로 태어났지만 미움을 받았던 다윗처럼 그들도 낙오자요 변두리 인생이요 흙 수저들이었습니다. 


인생의 희망도 목적도 없이 살던 400명의 떠돌이들은 다윗을 중심으로 다윗을 따랐고 닮아가기 시작하더니, 다윗처럼 기도하기 시작했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 공동체는 400명에서 6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아둘람 굴은 비좁아졌고 더 넒은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왕과 동맹을 맺고 시글락 성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시글락 성을 비우고 전쟁에 나간 사이에 아멜락 족속이 침략했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고 성을 불살랐습니다. 


사흘 후 돌아와서 잿더미가 된 것을 본 다윗은 망연자실했고 하나님께 절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바로 쫒아 가면 모든 것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30: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지체할 시간도 없이 600명을 이끌고 아멜락 족속을 뒤쫓아 갔지만 계속된 전투로 600명 가운데 200명은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사무엘상 30:10]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쓰러진 200명은 짐을 지키면서 시냇가에 남기로 하고 나머지 400명만을 데리고 아말렉을 공격하였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전투는 계속되었고 다윗은 대승했습니다. 


빼앗긴 것을 다 되찾은 후 시냇가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200명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승리후 갖게되는 모든 전리품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운 전사들에게 주는 것이 상식입니다. 즉 전리품은 전쟁에 참여한 400명의 몫입니다.


[사무엘상 30:22]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400명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200명에게 전리품을 주면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했지만 공동체가 쪼개질 위기에 다다랐습니다. 


이 주장은 매우 상식적이며 당연한 세상의 법칙입니다. 즉 세상의 법칙은 강한 자들이 더 많이 갖는 것입니다. 강자는 차지하고 약자는 빼앗기는 것.. 이 정글의 법칙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400명의 강한 자들만 이 모든 것을 소유한다면 약한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저 시냇가에 남아서 짐을 지키던 사람들, 삶에 지친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 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순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사무엘상 30: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다윗은 용사들에게 이 승리는 우리만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임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전쟁에 참여한 그대들과 시냇가에서 기다린 200명은 모두 하나의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사무엘상 30:24]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다윗은 말합니다. 


“똑같이 분배하라”


전쟁에 나갔던 용사들은 강하고 용맹하고 전리품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시냇가에 남아있던 200명은 연약하고 피로에 지치고 겁에 질린 자들, 전리품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모두 똑같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초월한ᆢ 세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법칙입니다. 


다윗은 8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일곱안에도 들지 못한 인생이었습니다. 

형들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러 갈때에도 다윗은 양들과 함께 들판에 남겨진 존재였습니다. 


형들이 골리앗과 싸우는 블레셋 전투에 참여하러 갔을 때에도 다윗은 남겨져 있었습니다. 지금 광야에서 탄생한 다윗의 군대는 남겨진 자들의 군대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세상의 강한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약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모형 같은 존재입니다. 


다윗을 중심으로 모인 이 공동체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입니다. 


강한 자들만 존중 받고 강한 자들만 소유하는 이 세상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공동체를 우리는 "교회"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400명에 속합니까 200명에 속합니까? 


여러분은 끝까지 전쟁에 참여할 만큼 강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지쳐서 시냇가에 남아야 하는 약한사람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쟁이 참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윗 공동체 이기에 전리품을 나눠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 공동체의 법칙이고,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고 자비의 법칙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을 표현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은혜와 자비입니다. 


하형록 목사님은 은혜와 자비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해 주셨습니다.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이 은혜(grace)이고,


받아야 할 것을 안 받는 것이 자비(mercy)이다”


햄버거 가게에 가서 3,000원을 내고 햄버거 세트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3,000원을 내고 햄버거도 받고 어벤져스 피겨까지 받으면 ‘은혜’입니다. 


무단 횡단하다가 경찰에 적발되면 범칙금 2만원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경찰관이 다가와서 신분증만 확인하고 그냥 가신다면 경찰님이 베푸신 ‘자비’입니다. 


천국 갈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천국에 보내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지옥 가는 게 마땅한 우리를 지옥에 보내시지 않는 것이 ‘자비’입니다.  


교회는 자비의 공동체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고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400명에 속하는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고, 200명에 속하는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는 다양한 공동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 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봉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30분 후에 도착해서 빈자리를 찾아 맨 뒷자리에 와서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는 누구에게 부어질까요? 


똑같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자비의 법칙입니다. 

광야의 사람들은 다윗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소망도 없던 떠돌이, 낙오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아무 가능성도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우리 인생도 역전되었습니다. 


세상과는 다른 이 자비의 법칙이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우리의 삶을 지배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으니 그 자비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증거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자비의 법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강자 앞에서 벌벌 떨고 약자에게 큰소리 치는 세상의 법칙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비의 법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강한 자들에게는 호의를 베풀고 나보다 약한 자들을 함부로 대하며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비의 법칙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의 법칙으로 각자의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이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인생이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은 사랑의교회 고3 주일학교를 담당하시는 김경덕 목사님의 4/3일자 설교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와 친절과 사랑을 찬양합니다. 


세상과는 다른 예수님의 자비의 법칙으로 약한 자들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합한 자 되어, 분노 대신 용서를, 불평 대신 감사를, 아픔 대신 기쁨으로 저의 마음을 채워주시옵소서. 


주님의 위로를 통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위로해 주고, 상처를 치유해주며 누군가에서 행복을 주는 제가 되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보배로우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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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16  영원한 내 편 되시는 주님 


[시편 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아프리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한 아프리카 대표가 강연을 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출세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청중들이 이해할수 없다는 듯 의아해 하자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영국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점령한 후 그 나라의 우수한 인재를 자국으로 데리고 가 대학교육을 시켰는데. 그들이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출세하여 아프리카로 돌아온 뒤 95% 가 타락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부 많이 해서 학위를 얻고 부요하게 되어 신앙을 잃어버리고 타락할 바에는 차라리 출세하지 않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사람이 출세하고 평안한 삶을 살다 보면 교만해지고 믿음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 없어도 잘만 사네 하며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할 때 더 깨어있어야 됩니다. 


우리 삶에 고난만 계속되면 낙심하게 되고 희망을 잃고 우울해지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이 편안하고 축복만 계속된다면 과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까요? 


아마도 말씀과 기도에 게을러지고 바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은 우선순위에서 멀어져서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이를 축복과 고난의 비빔밥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하고 회개하고 희망을 굳게 붙잡고 삶을 돌이켜 보고, 축복을 받을 때 방심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잠들지 않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에는 축복과 함께 비빔밥을, 축복에도 고난과 함께 비빔밥을 먹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책 한 권 쓰시지 않으셨지만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지혜와 진리를 가르치셨고, 번듯한 집 한 채 없어 머리 둘 곳도 없으시면서도 세상의 부의 주인이 되시며, 군사 한 명 없으셨으나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난을 당할 때에도 주님만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내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이나 슬픔을 당했을 때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과 그가 자녀되는 나를 보호하고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생각할 때 세상 사람들의 거짓 증거도, 반대자의 강한 궤계도, 강한 자의 훼방과 모함ᆢ 그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내 편이시며 항상 나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신데 사람이나 환경, 그것들이 어찌 우리의 두려움이요 절망이 되겠습니까?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기도 하고,.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날 선 칼이 되어 자신과 주변을 상처 입히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 이면에는 따스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숨어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꿈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인생살이가 칠흑같이 어둡고 캄캄해도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주님이 선한 목자가 되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1: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같이 계신 것을 알면 모든 고난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담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며 시험하시고 결국에는 복을 주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시험과 환난을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핑크(A. Pink)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첫째, 광야의 시련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못나고 허약한가를 발견하게 해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광야의 삶을 통해서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했습니다. 


광야를 통해야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답답한 곳이 있어야 시원한 바람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는 두번째 이유는 성령님께서 도우시기 떄문입니다. 


진실로 성령은 우리의 변호자요, 위로자입니다. 진심으로 나를 돕는 이시며 나의 고민을 듣고 해결해 주시는 완벽한 상담자이십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증거하였습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께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미리 아셔서 필요한 대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도우시는 성령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미리 아시고 해결하여 주실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는 세번째 이유는 모든 결과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다가도 실망하고 좌절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노력한 것만큼의 대가나 열매, 인정을 받지못하기 때문일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더더욱 그것 때문에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만사를 계획하는 것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나 그 일을 궁극적으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씀은 주님꼐 다 맡기고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게을러도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신이 계획하는 모든 일을 성취하시며 궁극적으로 선한 길로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모든 결과를 맡기고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맡은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죽도록 충성하되, 자신의 노력에 합당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절망하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오직 선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낙심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길입니다.


주님을 인정하십시오.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받아들이십시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십시요. 항상 내 삶속에 내 생활 속에 모셔 들이십시오. 


항상 모든 일을 주님께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구원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영원토록 제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제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시는 주님이 저의 목자로 항상 함께 계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 진리를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축복과 성공과 승리가 되는지 형언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영의 눈을 열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완전히 위탁함으로 두려움 없이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어떤 환경과 형편,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저를 보호하심과 함께 하심을 믿고 어떤 시험과 고난에도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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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16 승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미가 7: 8] ~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호주에 사는 교민 한 분이 조국에 왔다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를 보고 가지를꺽어서 자신의 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좋은 토양, 좋은 햇볕 덕에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보다 더 무성하게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첫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다음해에도 그리고 3년째에도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전문용어로 ‘춘화현상’이라 하는데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춘화현상의 꽃과 같습니다. 추위를 거치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고 피어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좋은 쇠가 되기 위해서 불 속에 들어가야 되듯이, 눈부신 인생의 꽃은 인생의 혹한을 거친 뒤에야 맺히고, 인생의 겨울을 거치면서 열매가 더욱 풍성하고 견실해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너무 힘들고 노력을 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으며 시간이 갈수록 미래는 더욱 어둡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꽃과 열매가 맺히는 인생의 봄은 추운 겨울을 지나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는가, 어떤 태도를 갖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내일과 미래를 결정합니다.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나그네와 같은 이 인생길을 가는 동안 크고 작은 시험과 환난과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의욕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더욱 강력한 방해꾼과 장애물이 몰려옵니다.

이럴 때 좌절하고 주저앉기보다, 그 고통은 ‘변장하고 찾아온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장애물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특별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환경으로 인하여 살지 않고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보호자되시며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주시니 우리는 노래하며 걸을 수 있습니다.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헬렌 켈러는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느끼며, 불가능한 것을 달성하게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영순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무엘상 14:6] ~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승리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승리는 무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승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 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ᆢ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뻐하고, 탄식하면서도 감사하고, 고통 가운데서도 찬양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주님의 손에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어서 내가 모르는 길을 열어 주시고 내가 모르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23:1~6]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를 힘들고 어두운 고난의 길에 혼자 내버려두지 않듯, 하나님은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갇혀있도록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은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시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존귀한 자녀이기에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자비와 긍휼과 은혜와 축복과 소망의 하나님을 붙잡으며 한주간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승리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피곤한 자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고, 실패한 자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않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이기에 절대 하나님이 홀로 버려두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제게도 허락하시어 제 앞에 펼쳐진 길이 험하고 거칠지라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걸어가게 하소서.

세상의 소리에 미혹되지 않게 하시고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확신하고 소망하는 견고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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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16  내 인생의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위한 예배


[이사야 58:13~14] “너희는 안식일에 관한 나의 가르침을 지켜야 한다. 그 거룩한 날에 너희 사업을 멈추고, 안식일을 기쁜 날이라 부르고, 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 날에는 너희 마음에 드는 일만 하지 말고, 너희 멋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너희가 내 안에서 기쁨을 누릴 것이다. 나 여호와가 땅 위의 높은 곳으로 너희를 이끌고, 너희 조상 야곱이 물려준 땅의 작물로 너희를 먹이겠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쉬운 성경)


♥어느 신앙심 깊은 부인이 주일에 교회를 가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만류하였습니다. 비도 오고 몸도 안좋으니 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말기 암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만류를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교회에 가야 해요. 예배 드리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예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예요. 예배 드리다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죽을 때까지 꼭 예배드리는 이 행복을 빼앗지 말아주세요…” 


그녀의 삶이 거의 다해 가던 어느 날, 그녀는 여위고 허약해진 몸으로 천천히 예배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고 얼굴빛은 매우 창백해 보였습니다. 남편이 산소 마스크를 들고 그녀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맨 뒷자리에 조심스럽게 앉혔고, 그녀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라는 가사의 찬양을 부르는 동안 그녀는 야윈 양손을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그녀는 힘없이 떨리는 손이었지만 계속해 들고 있었고, 눈을 감고 약간의 미소를 띤 채 나지막하게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평안히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특별히 구별한 거룩한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이사야 58장에서 주일을 거룩한 날, 존귀한 날, 즐거운 날로 지키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즐거움을 누리고 모든 사람 앞에 높여 주시고 부요케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출발입니다. 


예배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이자 인생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입니다. 


할 일 없을 때나 시간이 있을 때만, 날씨가 좋을 때만, 내가 가고 싶을 때만 가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생활입니다. 예배를 귀중히 여기고, 매 순서순서 집중하여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면 그와 그 후손이 복을 받습니다. 


어떤 중국 선교사님의 말에 의하면 중국의 한 시골에서는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금요일 저녁에 집에서 출발하여 걸어서 교회까지 가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월요일 저녁쯤에나 돌아오는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 성도에게 예배 시간은 살아가는 이유요 삶의 중심이고 가장 귀하고 힘이 되는 시간, 하나님과 만나는 감격의 시간이었기에 한주가 이 예배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예배에 집중하지 않고 잡생각을 하거나, 안가면 벌 받을 것 같아서 마지못해 드리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지고, 신앙이 무너지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예배를 귀중히 여기십시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예배 시간 5분전에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것은 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가 살면 모든 것이 살고 예배가 죽으면 모든 것이 죽습니다. 


예배는 마치 다 닳아버린 배터리를 재충전하는 시간과 같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맛보며, 그 영광의 능력을 덧입는 시간입니다. 


이 세상을 능히 살아갈 능력을 공급받는 시간이며, 죄와 싸우느라 지치고 피곤하여 어두워지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여 치유받고 회복되는 시간입니다. 


장차 우리가 맛볼 천국의 영광이 죄악 많은 이 세상에서 실현되는 시간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예배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나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내가 설교자를 평가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가 은혜롭네 아니네  판단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설교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예배를 통해 죄 사함과 마음의 병을 위로 받고 사막에서 생수가 흘러나는 것 같은 복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마가복음 2:27~28]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배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한두번씩 빠지다 보면 처음엔 죄책감이 생기다가 어느덧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고, 결국은 예배와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이름뿐인 크리스천이 되고 맙니다. 


진정한 신앙인이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자로써, 세상을 포기하고 교회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부인 가정, 직장, 지역사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려서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항상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참된 예배자가 되면 예수님의 생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목마르고 깊은 고통속에 소외된 우리는 참된 예배를 통해 영적 생수를 경험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어떤 의미일까요?


영으로 드리는 예배란ᆢ


성령충만과 열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진리로 드리는 예배란ᆢ


진리인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예배,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목마른 것을 고백하는 예배, 자신이 탕자임을 고백하는 예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진리를 인정하는 예배를 말합니다.


내일의 주일 예배가 내 생애 마지막 예배인것처럼ᆢ  참된 생수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소중한 예배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새 몸과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진정 살아있는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어떤 방해와 핑계, 게으름, 핍박에도 예배를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내일 예배를 살려주시고, 영과 진리로 참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말씀과 기도, 전도와 교제, 예배를 통해 건강한 신앵생활을 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축복과 은혜를 넘치도록 누리게 하소서.


제 삶의 생수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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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16 내 인생의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예수님 2


[전도서 5: 10~12]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돈 많은 신랑을 만나 결혼하면 행복한 삶,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드디어 그 자매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꿈을 품고 결혼해서 살아보니 현실은 꿈과 달랐습니다.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끊임없이 시간에 쫓기며 살았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오순도순 밥 먹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돈을 가지고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무지개빛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이 돈 많은 남자하고 살아서는 아무 희망이 없다. 내가 꿈꾸는 행복이 돈에서 오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그 남자를 버렸습니다.


[누가복음 12: 15] ~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제2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정치가와 결혼했습니다. 


대중 앞에서 연설하고 박수를 받는 권력을 가지면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생활이 없어졌습니다. 정치가는 공인이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의 비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옷을 잘 입어도 비평하고, 못 입어도 비평했습니다. 좋은 집에 살아도 비평하고, 좋지않은 집에 살아도 비평하고 모든 것이 비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비난, 시기, 모략, 중상이 끝이 없었습니다. 정치가의 아내로 살아보니 너무나 머리가 아팠습니다.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행복을 찾아 왔는데 행복의 장소가 아니라 권력 다툼으로 인한 전쟁터였습니다. 


그녀는 결국 여기에도 행복이 없다고 결론짓고 그를 떠났습니다.


[시편 146: 3~4]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그래서 이번에는 착하고 조용한 학자와 결혼했습니다. 


학자와 결혼하면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이해해 주고, 어려운 일은 상의하며 시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이 학자는 자기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 학문과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서재에 들어가 연구만 하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잠깐 이야기 하자고 하면 ‘내일 강의할 원고 작성해야 되는데 왜 귀찮게 하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월급이 너무 작았습니다. 매월 가지고 오는 월급으로는 생활하기도 힘들었고, 식사시간에 만나 대화를 해보면 그는 세상사는 일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도 마음의 만족이 없었고 그녀의 꿈과 이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전도서 1: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그녀는 결국 학자와의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밭에 농작물을 심고 사는 건전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농부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농부의 아내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혼도 지나지 않아 농사를 짓기 위해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새벽에 일꾼들의 밥을 지어 주고, 짐승들에게 여물을 먹이고,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또한 농산물을 생산해서 판매하는데 농사짓는 비용도 안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어쩌다가 흉년이라도 들면 정말 말할 수 없이 고생했습니다. 


언제 얼굴에 크림을 발라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새카맣게 타고 손도 거칠어져 다 갈라졌습니다. 


농부의 아내는 고생만 할 뿐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농부의 아내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다의 신선한 공기를 맛보고 모래사장 위를 걸으며 생선을 잡아 신선한 회를 먹고 사는 어부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는 행복이 찾아 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면 폭풍이 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파도 소리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공포의 소리로 변했습니다.


매일같이 큰 파도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항상 배가 파선되지 않았는지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또한 생선이 많이 잡힐지 늘 불안하고 물고기의 수확이 불확실해서 생활에 염려가 많았습니다. 


팔기에도 부족해 신선한 생선회는 구경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꿈은 다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불안할 뿐이었습니다. 마음에 근심걱정만 쌓이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어부 아내의 삶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남편을 다섯 명이나 바꾸고 나니 너무나 공허하고 아무런 삶의 의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상도 없고 꿈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모든 사람들의 소문거리가 되어 동네를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물 길러 나오지 않는 무더운 대낮에 물동이를 메고 물 길러 나오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삶의 행복을 포기했습니다. 


[요한복음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결코 행복은 사람이나 환경, 물질이나 명예를 통해서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의 물을 마시면 또 목말라집니다.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인간은 예수님 없이는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정죄의 절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허무와 무의미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이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만 삶의 절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죄책과 정죄의 절망,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 죽음과 무의 절망을 가슴에 안고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가슴속에 텅 빈 절망의 공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인 파스칼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공백이 있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요한복음 14: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생명수를 터뜨려 놓았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우리는 용서와 의의 생명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거룩함과 성령 충만, 치료와 건강,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 부활, 영생의 생명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37~39] ~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우리의 빛이요, 소망이요, 생수가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행복과 만족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저의 목마름을 채워주시지 하나님 아버지,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어도 행복을 얻지 못한 것처럼 진정함 행복이 세상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히시고 피흘리신 예수께서 생명의 원천이 되시고 생수의 근원이 되심을 항상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예수님을 통해 제 속에 참만족과 참행복의 생수가 넘쳐나게 하소서.  


오늘 다락방을 통해 인생의 갈급함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진솔하게 나누고, 영생의 생수가 솟아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귀하고 복된 시간이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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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6 내 인생의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얼마전 미국 캔자스신문에는 “저한테 전화해서 30분간 대화해주면 50달러를 지불하겠습니다.” 란 광고가 실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고립된 아파트에서 고독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입니다. 

이런 광고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아직 심각한 징후라고 할 수 없는 희망적인 경우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누군가에게 전화하거나 대화를 하자고 부탁할 의욕조차 상실한 채 스스로 관계를 차단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인 중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바로 그런 고립된 인생을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제 6시, 즉 낮 12시에 물을 길러 우물가에 나왔습니다. 


사막지대에서 가장 더운 때, 아무도 우물가에 나오지 않는 시간을 선택해서 나왔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상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문제 인생이란 큰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웃을 믿지 못하고 그들에 대해 공격적입니다. 


지나치게 필요이상으로 자신에게도 적용하지 못하는 정의를 이웃에게 강요하고, 주변사람이 평범하게 던지는 말을 순수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고 다시 의문부호를 던집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자 줄 수 있다거나 없다고 하지 않고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요한복음 4:7~9]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유대인에게 평생 멸시당해 온 사라이아인의 역사적 상처가 이 여인의 말에서 묻어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사마리아 땅 사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고 그들을 부정하고 불결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대접을 당하다 보니 내면적 상처가 불쑥 튀어나온 것입니다. 


할 수 있으면 누구든 피하고 싶으니 제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달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Leave me alone (나를 혼자 내벼려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게 물을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이 여인이 목마른 인생인 것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꾼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목마른 인생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한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애인을 바꾸고, 파트너를 바꾸고, 직업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교회도 바꾸고… 


그래도 만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끝없는 목마름, 타는 목마름으로 허덕이다가 마음이 가는 곳이 생기면 집착하게 됩니다.  


부모한테 버림받은 분노와 상처를 받은 다이애나비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른 여인이었습니다. 


찰스 황태자와 결혼한 후 카밀라 파커볼스와 염문 사건이 터지자 다시 버림받은 내면의 고독한 공간을 채우고자 대리만족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머리 손질에만 5,400달러를 썼고, 몸매 관리와 의상 구입에 연간 87만 달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마음의 공간을 달래지 못해 5번의 자실 기도와 거식증에 시달리면서 계속 애인을 바꾸었습니다. 


그녀의 종말은 비극이었지만 우물가 여인은 해피엔딩이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우물가 여인이 발견한 인생의 해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대답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순간, 사람들을 피해 다니던 그녀는 동네로 달려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상처를 넘어서서 자기 이웃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영원한 생수를 마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변한 여자>란 유머처럼 그녀는 변했습니다.  


여우🐺 같은 여자에서 여유 있는 여자로

화난😠 여자에서 환한 여자로

따지는😡 여자에서 따뜻한 여자로

착각하는😣 여자에서 자각하는 여자로

색기 있는 여자에서 색깔 있는 여자로

밝히는 여자에서 밝은 여자로

답답한 여자에서 답을 아는 여자로

빚이 많던 여자에서 빛을 발하는 여자로ᆢ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립되고 상처 나고 목마른 인생을 한 순간 바꿀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땅에 오셔서 우물가에 먼저 도착하여 이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요 내 형편 나의 아픔 나의 상처를 다 아시는 분입니다. 


지금 이순간 나를 만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걍팍하고 외로운 지금의 인생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구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갈급한 영혼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생수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영육의 깊은 갈증이 해갈되고, 이웃과 태신자들에게 예수님이 진정 내 목마름의 해결자이심을 고백하고 증거하는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의 아픔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세상적 인기와 돈과 명예와 재물이 다 인것처럼 착각하며 살았던 저를 회개합니다. 


또한 세상에서 받은 여러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시고 눈물 닦아주시고 꼭 안아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이순간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을 거부하지 않게 하시고 마음과 눈과 귀를 열어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생수를 마시게 하소서. 


매일매일 말씀과 기도와 묵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뜻대로 기쁘고 자족하는 승리의 인생을 살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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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16 진정한 리더쉽이란?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이사야 60: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 어느 날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 현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비서가 구두를 닦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임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쩔쩔매며 말을 꺼냈습니다.


"각하, 이게 어찌된 노릇입니까?" 


"어떻게 된 노릇이라니?"


"일국의 대통령이 천한 사람들이나 하는 구두닦이를 손수하시다니 이게 될 법한 일입니까?" 


대통령이 대답했습니다.


"제임스 군, 자기 구두를 자기 손으로 닦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이게 무슨 잘못된 일인가?"


비서는 링컨 대통령의 겸손함에 감탄하여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잠언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예에 관해 여러 인물과 사례들이 신문 칼럼 등을 장식하고, 다양한 리더십에 관한 책들이 홍수처럼 넘쳐 나옵니다.  


“국민일보 겨자씨”에서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원조는 예수 그리스도> 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시고 사명을 다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분의 제자라면 마땅히 그분의 섬김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지도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 먼저 주님처럼 서번트 리더십으로 다른 이들의 발을 씻겨주고 섬깁시다. 


그렇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함을 갖춘다면 다시금 한국교회와 함께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종의 마음으로 헌신할 때 공동체가 하나로 연합할 때 일어나는 놀라운 결과는 교회뿐 아니라 올해 우리 사회를 바꾸는 새로운 변혁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서번트 리더쉽을 배워 우리 가정과 사회와 직장을 바꾸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그 어떤 처세나 리더십 서적보다도 오랜 세월 인류의 역사와 함께 검증된 많은 리더들이 나옵니다. 


다음은 크리스천 투데이에서 나온 “성경 속 인물 통해 보는 리더십의 유형” 기사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주님을 따라 걸어오면서 고난과 영광의 순간을 만났습니다.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모두가 달라, 성공한 영웅과 실패한 이들 모두에게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이 시대 지도자들은 성경 인물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요? 


성경 속 인물을 통해 이 시대 지도자들에게 전달해줄 리더십에 대해 알아봅니다. 


🍀사도 바울의 개척 정신 : 


그는 바리새파 출신이며 상류층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핍박하는데 앞장선 인물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개혁적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바울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 명확하였으며,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소아시아교회를 개척하러 나갔고, 그는 기득권을 버리고 분명한 정도를 향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또한 그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것처럼 너희들도 나를 본 받는 자라 되라”라는 말씀을 통해 자신을 낮추면서도 상대방에게 설득과 따름을 만들어 내는 뛰어난 리더십을 지녔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다윗의 섬김의 리더십 : 


평범한 양치기 소년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까지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의 남을 섬기는 자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늘 교만하지 말 것과 주위사람들을 믿을 것을 말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보다 떳떳하게 인정하고 뉘우치는 인물입니다. 


[시편 6: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편 51:10~1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다윗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섬기는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섬김과 진심 어린 통합 리더십으로 모든 지파의 다양한 의견과 이익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탈 권위적 리더십 : 


출애굽의 주인공 모세에게서 탈권위적 리더십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설득하고 이집트를 떠나는 대장정의 길을 갔습니다. 거기엔 명령이나 기타 강압적인 방법도 아니요, 하나님을 거론하면서 들먹거리지도 않았습니다. 


모세는 왕족이었지만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모세는 스스로 이스라엘 사람들속으로 들어갔고 그들과 함께 행동했습니다. 그런 모세의 진심은 사람들을 움직였고, 출애굽이라는 대서사시를 쓸 수 있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신명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솔로몬의 지혜로운 리더십 : 


솔로몬 왕은 통합적인 리더십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배경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왕의 지혜는 지금까지도 논쟁을 해결하는 사례에서 고루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혜’는 모든 리더들이 가져야 하는 기본이지만, 어떻게 지혜를 가지느냐가 문제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열왕기상 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성경의 모든 영웅들의 장점을 고루 가지고 있는 솔로몬왕이지만, 결국 그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국가를 경영하고,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 역시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지혜는 자연스레 자리잡을 것입니다. 


[전도서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우리나라를 축복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내일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진정 나라와 민족을 참으로 사랑하는 지도자를 세워주시고,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롭고 겸손과 섬김의 리더쉽을 갖는 진정한 리더로 헌신하게 하옵소서. 


당선되는 모든 지도자들이 당리당락보다 국가의 공익과 정의를 위해 일하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있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과 새 몸으로 경제강국, 복음적 평화통일, 선교대국의 꿈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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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16  일사의 각오와 다짐으로 사신 주기철목사와 오정모 사모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히브리서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우리 주님 날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 이렇게 날 위해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하리요.. 

나는 일사의 각오와 다짐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를 저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 떨어질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살아 계십니다. 

부디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사십시다.

더럽게 무릎을 꿇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각오와 다짐과 정절을 지켜나갑시다. 


다만 나에게는 일사각오의 결의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다섯 번째로 구속돼 형무소에 갇히기 직전 자택에서 늙은 노모와 처자, 20여명의 평양산정현 교회 교인들 앞에서 주기철 목사님(1897~1944년)이 남긴 생애 마지막 설교입니다.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셨던 주기철 목사님이 없었다면 한국교회의 정통성은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고, 손양원목사님도, 안희숙 사모님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막내에게는 생명보험금으로 잘 교육시켜 달라. 어머니를 잘 봉양하라.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에 아내인 오정모 사모는 ‘목사님이 가정에 무슨 미련이 남아서 이런 것을 보낸 것이냐.. 주를 위해 살겠다는 사람이 왜 가정문제를 주님께 못 맡기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정모 사모는 어떤 분일까요? 


다음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남편 주기철 목사님을 최후까지 지켜준 버팀목이자 우상과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굳은 신앙의 삶을 살았던 오정모 사모에 대한 글입니다. 


📝해방의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일제의 탄압은 극심해졌다. 영혼을 굴종시키는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이들은 영혼뿐 아니라 몸까지 만신창이가 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영원히 새벽은 오지 않을 듯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먼 데 계신 하나님 대신 가까운 폭력 앞에 엎드렸다. 


주기철 목사는 달랐다.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해 부임한 지 2년이 채 안 돼 투옥됐다. 


개신교 교단인 평양노회는 그를 감싸기는커녕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주 목사의 목사직을 파면하고 가족들을 엄동설한에 교회 사택에서 내쫓았으며 1940년 마침내 교회를 폐쇄했다. 


주 목사의 부인 오정모(1903~47)는 시어머니와 전처소생 네 아들과 함께 거리로 내쫓겼다. 그것은 시련의 시작이었다. 일제는 신사참배 거부자를 굴복시키기 위해 가족을 이용했다. 


일본 경찰은 주기철의 아내와 노모, 당시 열 살이던 막내 아들 광조를 지하취조실로 불러들였다. 


그들은 주기철의 손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고선 발길로 차고, 목검으로 내리쳤다. 그러면 주기철은 공중에서 그네처럼 흔들렸다. ‘그네뛰기 고문’이었다. 


고문이 시작되자 노모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오정모는 엎드려 “주님”을 부르며 기도했다. 


주기철이 기절하자 경찰은 오정모를 고문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주기철이 아내가 발길로 차이는 동안 엎드려 “주님”만을 불렀다. 


부부는 감당키 어려운 고문을 기도로서 이겨냈다. 어린 광조의 눈엔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고문을 불러오곤 하는 어머니가 답답하고 야속하게 느껴지곤 했다. 


결국 주기철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을 일년 앞둔 44년 4월 21일 밤 9시 옥중에서 순교했다. 


많은 교회들이 신앙과 민족을 동시에 저버렸던 때에 주기철은 한국 교회의 자존심을 지킨 인물로 부활했다. 


그러나 오정모를 기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당시 산정현교회 신자들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투옥된 주기철은 몰라도 교회가 폐쇄된 뒤에도 남편을 대신해 심방을 다니며 교인들을 규합하고 신앙을 지키도록 하면서 주기철이 최후까지 일제에 항거할 수 있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오정모의 활동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평안도 강서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여고를 졸업한 오정모가 주기철을 만난 것은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가 몸이 아파 머물러 있던 부산의 처량교회에서였다. 


오정모는 그곳에서 주기철 목사의 부인인 안갑수(1900~33)와 언니 동생하며 지냈다.


그 뒤 마산의 여고 선생으로가 문창교회를 다녔는데, 주기철 목사가 문창교회 담임으로 부임해 왔다. 안갑수는 얼마 뒤 종기 수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죽기 전 오정모를 불러 남편과 아들 4형제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주기철의 아이들은 당시 15, 12, 7살이었고 막내 광조는 갓 돌을 지난 때였다. 


독신 여성으로서 교육가를 꿈꿨던 오정모는 결혼 3년만에 주기철이 투옥돼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오정모는 먹을 것이 없었기에 하루 걸러 금식 기도를 했고, 한 달에 3일은 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은 금식기도를 했다. 


그의 몸은 연약하기 그지없었음에도 그런 기도의 힘 때문이었는지 귀신 들려 미쳐 날뛰던 사람들도 그의 앞에선 순한 양이 되었다.


우상숭배에 동참하면서 변절했던 교단과 교회는 해방이 되자 반대로 주기철 우상화에 나섰다. 


그러나 오정모는 철저했다. 평양 산정현교회 교인들이 주기철의 동상을 세우려 하자 “왜 주 목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느냐”면서 호통을 쳐 물리쳤다. 


그러자 교회에서는 주 목사님의 유가족들에게 많은 토지를 사 드리고 소작을 주게 하여서 그 소득으로 평안하게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모는 이것도 극구 거절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물건에 의지하면 신앙이 적어지기 때문에 안 됩니다. 남편을 팔아먹는 아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안 됩니다. 제 아비를 팔아서 크는 자식은 병신처럼 될 것이니 자력으로 일어서도록 길러주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에게 의지하는 일은 절대 안됩니다."


오정모는 말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겪은 고통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며 마취를 거부했다. 그를 속여 마취한 뒤 수술한 이는 장기려 박사였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정모의 투병과정을 지켜본 장기려는 한 순간도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얼굴에 빛을 가득 내뿜으며 선종하는 그녀에 대해 “성경 히브리서 11장에 추가될 만한 믿음의 영웅”으로 평가했다.


오정모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장교 두 명이 찾아와 김일성 장군이 보냈다며 상자 두 개를 내려놓았다. 


상자 안엔 지폐가 가득했다. 논밭문서와 적산가옥 문서도 있었다. 


오정모는 “주 목사께서는 후세에 이런 선물을 받으려고 순교한 게 아니기에 뜻은 받지만 물건은 받을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이를 보고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아들 광조를 앞에 앉힌 그녀는 시편 37장 25~26절을 펼쳐 읽게 했다. 


[시편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주광조 장로는 “남하해 홀로 살아가면서 그 때 큰 돈을 받지 않은 어머니가 많이 원망스러웠지만, 그 시편이야말로 부모님께 누가 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한 ‘위대한 유산’이었다”고 회고했다. 📝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에 반대해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교회와 민족을 위해 끝까지 저항하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신앙과 삶을 그린 영화 "일사각오"를 40% 할인된 가격에 이번 주 수요일인 13일 선거일에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CGV 구로·여의도·목동·용산 등 전국의 CGV 29곳과 서울극장, 메가박스 북대구점)


아직 못보신분들은 선거를 마치신 후 가족들과 함께 일사각오 영화를 보시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고 십자가의 순교적 신앙을 회복하는 귀한 시간 되시길 기도합니다. 


♣ 죽기까지 세상의 빛으로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과 안정모 사모님을 통해 많은 깨달음과 회개를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목적이 세상 속에 보냄 받은 제자로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인데,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지 못한 채 어린아이와 같이 습관적인 신앙생활만을 답습해 왔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의 순교적 신앙으로 죽기까지 쓰임받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참행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나의 유익과 부귀영화만을 위해 살지 않고 믿음 안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신실한 일꾼이 되게 하소서. 

 

어떤 환경과 상황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더 가까이 가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 묵상과 찬양으로 주님과 매일 만나고 주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영적 성장을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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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제목: 머뭄과 바쁨

말씀 범위: 골로새서 4장 2~6절 


- 우리,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하나님은 나 자신을 원하십니다. 나는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가? 


1) Quite Time 의 체질화<기도의 골방 회복>

2) 가정예배의 정착<가족의 영적 건강 도모하는 원리>


전심으로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성도 


1. 자신이 먼저 기도에 힘쓰라 (2절) 


- 사도행전 1장 14절 = 기도에 힘쓰라 

- 사도행전 6장 4절 = 사역에 힘쓰라(전적으로 섬기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삶에 집중했다(기도와 말씀을 붙잡았다). 

영혼의 새로워지는 은혜,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라.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깨어서 기도하라! 


2. 이웃을 위한 기도를 강화하라! (3~4절)


우리가족을 위해 내가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공동체(직장과 캠퍼스를 위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3. 성숙한 대인관계를 이뤄야 합니다(5~6절)


- 하나님의 지혜로 동행하라, 기도의 골방에 시간을 투자하라 

- 기도생활의 중심을 잡아라! (QT, 기도)


성도가 기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기도의 골방 회복, 말씀의 골방 회복 


삶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주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 기도의 골방 회복 실천사항 


1.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을 기억하라, 특히 우리 주님을 기억하라. (모범)

2. 기도시간을 정하라. (언제)

3. 기도의 장소를 정하라. (어디서)

4. 기도의 제목을 준비하라. (무엇을)

5. 기도의 동역자를 만들라. (누구와 함께)

→ 주님가 함께 머물기를 작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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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제목: 한계를 직면하라 

말씀 범위: 신명기 1장 21~33절 


-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우리의 마음의 동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불순종과 원망이 가득했다.

귀를 닫은 백성들 두려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미래를 붙잡고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 땅을 너희 앞에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주 약속안에서 미래를 붙잡아야합니다.

한계에 직면하면 난 어떠한가??


체력의 한계, 영적인 한계, 재정의 한계 등 ...

일이나 재정에 쫓기지는 않습니까 ? 


열심히 제대로 살아봅시다. 한계는 어디서 오는지 아시나요  ?? 


담대하게 ! 담대함으로 나아갑시다.

내가 선택하고 고른 길이 내게 옳은 일인가 생각해봅시다.


모든 이해와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약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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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3 주일 설교  (0) 2016.04.04
2016.03.27 주일 설교  (0) 201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