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어떤 사람이 바닷가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나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야, 위를 올려다 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 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춰지는 깊은 바다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습니다.

"내 딸아, 이처럼 한없이 높고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란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살고 있군요."

[에베소서 3:18~19]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 넓이, 그리고 깊이를 생각해 보신적 있나요?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 없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비참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이 주는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 세상에 가장 큰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먼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꼐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 사랑에는 지극한 용서가 내포되어 있고 무한한 인내가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한 십자가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신음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셨고 그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사랑의 완전체이고 이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세상에 사랑을 내어줄수 있습니다.

어떤 예수님을 잘 모르는 한 아이가 예수님을 믿는 고모와 함께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아이가 질문을 했습니다. "고모, 왜 벽에 "더하기(+)"가 붙어있어?"

그러자 고모가 대답했습니다.

"너 예수님 알지? 저 "더하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더해 주셨고, 구원을 더해 주셨고, 기쁨과 즐거움을 더해 주셨다는 표시란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더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뜨거운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계산적이고, 외적 조건과 내적 기분에 따라 바뀌며 시간이 지나면 미지근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는 뜨거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개정판도 없고 증보판도 없는 영원토록 동일한 사랑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끊을수 없으며 죽음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조차도 사랑하는 "크고 넓은 사랑"입니다.

[베드로전서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 중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각각의 사람을 한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조차도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는 크고 넓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비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에벤에셀과 여호와 이레의 사랑"입니다. 에벤에셀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이레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예비하시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까지 우리를 도우셨던 것들 위에다 여호와께서 예비하신 것을 건축하는 사랑입니다.

완성된 제품을 주시지않고 미완성의 재료를 예비하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심으로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말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아 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그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억울하고 공허한 인생일 것입니다.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인간의 반응이 예비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에 보답하는 인생이 되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드러내고 그 사랑의 진가를 맛보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찬송가 4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은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받았으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저의 영혼 깊은 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차게 하시어 사랑을 실천하고 베풀며 살게 하소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고, 매일 하나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말씀을 배움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서 말씀 앞에 순종하여 믿음이 성장하고, 삶 속에서 인격이 성숙되어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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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0: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쉬운 성경: 너희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잘못된 길로 가려 하면 뒤에서 “이 길이 옳은 길이니 이 길로 가거라” 하는 소리가 너희 귀에 들릴 것이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기르던 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이 개를 돌려주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주겠다며 광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부터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개를 데리고 있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그 개는 먹지도 않고 짖지도 않고 매우 침울해있다고 전했습니다.

개 주인은 전화를 건 사람에게 “전화기를 그 개한테 좀 대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수화기를 개의 귀에 대주었더니, 그렇게 슬퍼하며 침울해 있던 개가 갑자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수화기에 귀를 댄 채 주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개 주인은 “내가 곧 가서 너를 집에 데리고 오마”라고 말했습니다. 그 개는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 이후부터 잘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방황하는 영혼들을 향하여 “그 사람에게 전화기를 좀 대주시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하나님은 그의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과 손에 스마트폰을 집중하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입으로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아~~ 난 왜 주님의 음성이 안들리지?” 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시편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하나님과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채널을 돌리면 소리가 지직거리다가도 주파수가 맞추면 방송이 정확히 잘 들리듯, 사랑의 주파수와 구원의 비밀번호가 맞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비밀번호도 맞고 주파수도 맞는데 들리지 않는 이유는 접속이 불량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정상적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숨은 죄가 있거나 죄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이기심, 욕망, 야망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충고가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을 해도 듣지 못합니다.

세 번째, 동기가 불순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어떤 이익을 취득하려 하거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고 사람을 이용하면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네 번째, 성경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에 해답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지금 몇 시입니까?’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지금 7시 40분이다”하고 대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계를 봐라”라고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물음의 해답 대부분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십계명부터 직업선택의 원칙, 사람 사귀는 원칙, 돈을 관리하는 원칙, 상처 받았을 때 해결하는 방법 등이 다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음성을 들려달라고만 합니다.

다섯 번째, 교만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서 나의 음성, 나의 고집, 나의 뜻과 의만 고집합니다.

여섯 번째,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을 때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정해놓고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자기 이기심은 다 숨기고 겉으로 신실하고 거룩한 척 행동합니다. 이기심도 만족시키고 신앙적 칭찬도 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자기 포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적은 사탄이 아니라 내 자신입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조용해야 상대방 말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소리가 크면 상대방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내 생각을 죽여야 하고, 내 자존심과 의지를 꺾고 ‘주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주님께 의뢰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있습니다.

✔ 매일 기도하십시오.

하루에 15분씩이라도 매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과 교제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맑은 영혼과 깨끗한 양심과 거룩한 믿음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십시오.

✔일곱 가지 장애를 기억하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대로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점검하십시오.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꾸준히 성경을 읽으면 성경적인 세계관과 가치관, 안목이 생깁니다. 그리고 영적 민감성이 키워집니다.

예를 들면, 지금 환난 중에 계시나요? 시편과 요한복음을 읽으세요.

[시편 50: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요한복음 16: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어려움 속에서 낙심되시나요? 시편 42편을 읽으세요.

[시편 42: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사야 41: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혹시 근심과 염려 중에 계시나요?

[베드로전서 5: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빌립보서 4: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불평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고 계시나요? 시편 37편을 읽으세요.

[시편 37:1~ ]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

혹시 죄로 말미암아 마음에 고민과 고통을 갖고 계십니까?

[요한1서 1: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울하고 외로우신가요?

[히브리서 13: 5]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를 격려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치료하시고 도전하시고 우리를 강하게 만드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더욱 더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길 기도합니다.

♣지금도 나의 옆에서 나에게 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끊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소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맑은 영혼과 깨끗한 양심과 거룩한 믿음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하소서.

주님의 음성과 내 안의 욕심을 분별하는 분별력도 주셔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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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약 50여 년 전에 미국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으로 큰 부자가 된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세 친구의 이름은 죤 뉴우턴, 루이 웨더포드, 사무엘 프레스톤입니다. 


석유산업 호황으로 억만장자가 된 이들은 전세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놀러 갔습니다. 그리고 엠배서더 호텔 69층 전체를 예약하고, 첫날 뉴욕 관광을 즐겼습니다.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취한 채로 호텔에 돌아왔는데, 호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었습니다. 


프론트 직원은 하룻밤만 2층에서 지내달라고 사정해지만 세 친구는 술기운에 객기가 생겨 69층까지 걸어 올라가겠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어올라 가는데, 처음 몇 층은 괜찮았으나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마지막 몇 층은 거의 기어올라가면서 2시간 반 만에 겨우 69층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올라와 보니까 프론트에서 받은 방 열쇠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갈 것을 생각하니 그만 정신이 아찔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구세주가 등장했습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손에 마스터키를 들고, 활짝 웃으면서 객실 문을 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고 많이 고생하셨지만 방 열쇠가 없으면 방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이 마스터키가 없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마스터키는 예수님이지요. 예수님 없이는 절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


세 친구는 방 안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마스터 키입니다'라는 청소 아주머니의 농담이 존 뉴우턴에게 어린 시절의 교회생활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두 친구에게 "예수님이야말로 정말 우리의 마스터키야"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두 친구도 그 고백에 동의하고 그날 밤 그들은 눈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날 밤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그들은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텍사스 제일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평생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기도의 후원자, 재정적 후원자가 됩니다. 빌리 그래함이 지금의 빌리 그래함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마스터키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누구이길래 예수님만이 ‘마스터키’일까ᆢ? 어떤 종교든지 한 가지를 선택해서 열심히 믿으면 되지 왜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일까ᆢ?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보기에 기독교인들은 너무나 편협하고 배타적인 사람들로 느껴집니다. 세상에는 종교가 많은데 구태여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만 고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배타적 자세가 종교 간 민족 간 분쟁을 일으켰고 그로 인하여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편협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주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자기 말을 취소, 수정, 가감, 후회하지 않았으며 ‘아마 그럴 것이다” 와 같이 애매한 말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그저 도덕적인 스승으로 대하기를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사기꾼이나 정신병자 아니면 하나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지칭했습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24] ~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참으로 사랑이 넘치시고 겸손하고 온유한 분이지만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오로지 자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아니라 단 하나의 길입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 만이 하나님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세가지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의 성육신입니다. 즉, 그는 인간을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그는 우리 죄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입니다. 


셋째, 그는 죽음에서 부활하였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분입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었고 인간이 바르게 사는 도리에 대해서도 여러 좋은 교훈들을 남겼지만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종교 지도자도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준 적이 없으며 또한 죽음에서 살아난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참하나님이며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임을 미리 예고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배반하여 팔 사람이 누구인지도 예고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사흘 만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무 막대기 두개와 못 세개로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다리를 만드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늘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나침반입니다. 


인생은 B to D라고 합니다. Birth부터 Death.. 즉 인생이란 태어나서 죽는 것입니다. 


그런 B와 D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C가 있습니다. Choice 선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살아가지만 가장 위대한 선택은 Christ입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선택하십시요.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따라서 예수그리스도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그런데 예수그리스도

하지만 예수그리스도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

그렇기에 예수그리스도

그렇지만 예수그리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

그렇게 하다가 예수그리스도

그러하면서도 예수그리스도

그렇겠다싶다가도 예수그리스도..🌱


♣저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저를 사랑하시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망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자유케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내 인생의 마스터키 되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예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가운데 넘치게 하시고,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의 본을 배워 작은 예수로써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오직 예수님만을 구원자로 믿는 흔들리지않는 뿌리 깊은 믿음을 허락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함으로  아프고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새 힘과 따뜻하고 끝없는 사랑으로 위로와 치유와 회복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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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한 미국 병사가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사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르자 주변 사람들은 그런 아내를 안스러워하며 더 늦기 전에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 재촉했습니다. 언제 돌아올 줄 모르는 남편…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내는 어린 딸과 함께 남편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밖에서 요란한 자동차 소리가 나서 나갔더니 그곳에는 남편이 서 있었습니다. 아내와 남편과 어린 딸은 모두 행복에 겨운 재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이처럼 기쁜 일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장 설레면서 기다렸던 날은 언제인가요?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이 땅에 오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11] ~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의 재림과 세상 끝날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열처녀 비유입니다. 열 처녀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는데, 그 중 다섯은 미련했고 다섯은 슬기로왔습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과 여분의 기름을 충분히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나갔기에 신랑이 더디 와도 기름이 떨어질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은 있었지만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않았기에 신랑이 더디 오자 있던 기름이 다 없어지고 등불이 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기름을 준비하러 나갔습니다.

그 순간 신랑이 왔고 잔치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손님들도 이미 다 들어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뒤늦게 돌아와서 문을 열어 달라고 졸라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게으르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미리 준비하지 않아 결국 신랑 맞이를 하지 못한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스라엘에서 신랑 신부는 간단한 약혼식을 먼저 치르는데 이것을 ‘정혼’이라고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정혼한 것은 이렇게 식을 올린 상태인 것입니다.

식을 치른 신랑 신부는 바로 헤어집니다. 신랑은 고향으로 가서 신부가 거할 곳을 마련하고, 신부는 정결하게 단장을 하면서 신랑이 올 때까지 신부로서 갖추어야 할 것을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신부는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항상 긴장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졸다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면 식장의 문이 닫혀 들어 갈수 없고 한번 닫힌 문은 절대로 열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신랑이 거처를 준비하기 위하여 떠났다가 신부를 찾아 다시 오듯, 예수님은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시고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반드시 오십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등과 기름입니다. 등은 믿음의 형식이요, 기름은 믿음의 내용입니다. 등은 성도의 외형적인 신앙생활을, 기름은 성도의 내면적인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등과 기름은 각자가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은 나눠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과 나 자신의 1:1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결단하고 내가 믿고 흔들림없이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약속대로 반드시 다시 오시기에 항상 깨어 있어야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졸거나 자면 안됩니다. 방학하거나 휴학해서도 안됩니다.

신부에게 있어서 클라이맥스는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듯, 우리에게 예수님 재림의 그 날은 생애 최고의 순간입니다.

예수님 재림의 날을 내 인생 최고의 날로 맞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 번째로, 영적으로 깨어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이 졸며 잘 때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같이 경고합니다.

[로마서 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영적으로 졸다가도 다시 말씀으로 즉시 깨닫고 바른 믿음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자기의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우리 각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도적이 밤중에 침입할지라도 주인이 깨어있으면 절대로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에 도적같이 오실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믿음을 준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강림하시든지 당황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맞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둘째, 형식보다는 내용에 충실해야 합니다.

열 처녀 모두 외형상으로는 등불을 준비한 것 같지만 다섯 처녀는 기름이 충분히 예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형식은 있으되 내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신앙도 겉모습은 다 그리스도인이요 제자인 듯하지만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없습니다. 믿음의 모양보다는 내 삶에 복음의 능력, 주님의 인격, 사랑의 수고가 나타나야 합니다.

셋째, 상급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증언하는 성경 구절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주님 앞에 설 때 받을 상급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넷째, 성령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외식을 삼가고 빛 된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곧 ‘성령 충만’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도 처음에는 기름이 있었지만 신랑이 올 무렵에는 기름이 떨어져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어제뿐 아니라 오늘의 성령충만이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의 불쏘시개는 ‘기도’입니다. 힘써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받아 세상을 이기게 되고 그 날에 거룩한 신부로서 기쁨으로 주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클라이맥스로 종말을 맞이하기 원하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그대가 받는 보수보다 조금만 더 일하라.

그대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하나님께 바치라.

그대가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열심을 내라.

그대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보다 조금만 더 높은 목표를 잡으라.

그대가 지금 유지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거리를 조금만 더 가까이 하라.

그대의 불평 불만보다 조금만 더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대가 땅의 것을 내려다보는 것보다 조금만 더 위의 것을 사모하라.

이렇게 매일매일 ‘조금만 더’ 수고할 때 종말은 분명 우리에게 최고의 날, 승리의 날, 축배를 드는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그 날은 진정 인생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이 심판의 날, 두려운 종말의 날이 아니라 생애 최고의 날,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되게 하소서.

천국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오늘도 힘차게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게 하시고,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다시 만나는 영광을 기다리는 가운데 성령충만하고 정결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게 하소서.

항상 깨어 마라나타를 외치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정결한 신부로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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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로마서 13: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어느 날 만나서 재밌게 놀았습니다.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때가 되어 헤어질 시간이 되자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벌써 저녁이네. 우리 내일 만나자.” 


그러자 하루살이가 묻습니다. 


“내일? 내일이 뭔데? 난 오늘밖에 몰라” 


메뚜기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잠시 후면 온 세상이 캄캄해지고 하늘에서 별이 반짝일 거야. 그렇게 어둔 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날이 밝아 오는데, 그게 바로 내일이야.” 


하지만 하루살이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내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루살이에게는 오늘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하루살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메뚜기는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개구리와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고 날이 추워지자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말했습니다. 


“메뚜기야, 우리 내년에 다시 만나 놀자.” 


“내년? 내년이 뭔데?” 


메뚜기는 도대체 ‘내년’이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없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날이 점점 더 추워지면 온 세상은 하얀 눈으로 덮여. 그러면 나는 따뜻한 땅속에 들어가 잠을 잔단다. 그러다 새싹이 돋는 봄이 오면 땅 위로 나오지. 그게 바로 내년이야."


하지만 메뚜기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내년’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


어리석은 인생이란 목적 없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내가 왜 오늘 존재해야 하는지.. 내가 왜 살아야 되는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 모르며 살아가는 것은 하루살이의 인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목적지ᆢ 천국을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서 오늘도 힘차게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사람을 세 종류로 분류해서 설명했습니다. 마치 우리 인생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배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배 안에 먹고 마시는 것만 있으면 됩니다. 


먹을게 많으면 행복하고 먹을게 없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의식주에 그들의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배가 어디로 가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날씨가 화창하고 경치가 좋으면 아주 즐거워하다가 궂은 날씨가 되고 볼거리가 없으면 바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배가 가는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그 방향대로 제대로 가는지 을 늘 점검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내가 지금 이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주일이면 산으로 들로 놀러 가는 대신 예배 드리고..  특별한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죄인이라며 매주 회개하고.. 새벽에 단잠에서 일어나 새벽기도 나가고.. 내 돈으로 내가 밥 먹으면서도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식사 기도하고… 이런 것들은 외형적인 차이점들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야 할까요?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나 나의 선행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려주심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특권을 가졌고, 하나님께 직통으로 전화할 수 있는 기도라는 통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에 걸맞게 의롭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6:21~24]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 땅에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인사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모든 성도가 그토록 소망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다스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라나타[Maranatha]는 아람어, 마란아콰[Maran aqa]는 헬라어로 ‘우리 주님이 오셨다’, 또는 ‘우리 주님 오소서’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마란아콰(Maran aqa)"라고 하는 용어가 [고린도전서 16:22]에 쓰였는데, 이것은 본래 아람어 마라나타(Maranatha)를 헬라어로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억하며 서로 위로하고 결심과 각오를 새롭게 한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정결하게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신부로서 정결한 삶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마가복음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주의 재림과 세상 끝날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종말을 내 인생 최고의 날로 맞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일 계속)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며 늘 깨어있는 참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심령이 천국을 경험하게 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는 사명을 잘 감당케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고 마라나타를 외치며 신부처럼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정결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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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요한일서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빌립보서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수학의 천재라고 불리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10살의 나이에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40세에 골머리를 앓으며 풀었다는 문제도 척척 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년은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주위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심한 부담감을 느꼈고 그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질 지경이었습니다.

소년의 부모는 걱정이 돼서 소년에게 긴장을 풀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고자 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자신의 친구 딸 베티와 소년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어린 소년과 소녀는 사이 좋게 손을 맞잡고 영화관에 들어갔습니다.

영화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온 아버지의 차에 올랐을 때 베티가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영화 어땠니? 난 정말 감동을 받았지 뭐야. 그녀가 흐느낄 때는 나 역시 눈물이 날 정도였어."

소녀의 얘기를 들은 소년의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베티가 울기까지 했다는 걸 보면 굉장한 영화였구나. 그런데 얘야, 너는 어땠니?"

그러자 꼿꼿하게 앉아있던 소년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오늘 본 영화 속에는 정확히 12,316개의 문장이 나왔어요. 그것은 93,896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었지요. 문법이 틀린 문장이 578개나 되었구요, 배우의 발음과 억양은 듣기 거북했어요."

수학방정식은 세상 누구보다 잘 풀었지만 행복 방정식은 풀지 못하는 천재 소년..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도 감동받지 못하고, 슬픈 이야기에도 눈물 흘리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못느끼는 이 천재소년의 삶은 너무나 걍퍅해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 천재소년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도 하나님의 임재를 못 느끼고..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이 진정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부어주신 감사가 넘침에도 감사하지않고..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음에도 그 복을 누리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산다면ᆢ

이 얼마나 메마르고 걍팍한 삶이가요?

[히브리서 3: 13] ~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개역한글)

‘강퍅’이라는 말은 굳다, 뻣뻣하다, 목이 곧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는 말은 즉 마음이 굳어지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동맥경화나 간경화처럼 육신의 질병으로 몸이 굳어지는 것도 무섭지만, 우리의 마음과 심령이 굳어지는 것은 더 무서운 일입니다.

내 마음이 굳은 길바닥과 같다면 아무리 좋은 말씀의 씨가 뿌려져도 뿌리를 내릴 겨를도 없이 새가 와서 집어 먹어버립니다.

[마가복음 4:15]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길바닥과 같이 걍팍한 마음의 상태가 되는 이유는,

어떤 이는 학문이 그 마음을 굳게 밟고 지나갔고, 혹은 과학이 혹은 철학이 밟고 지나갔기 때문에, 혹은 과거의 경험과 자신만의 닫혀진 세계에서의 고정관념과 편견, 자기 의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가에 의해 굳어지면 생명력이 그만큼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생명은 굳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부드럽게 움직이고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심령은 굳어져 있습니까? 아님 언제나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온유하고 부드러운 상태입니까?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심령을 강퍅한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는 강퍅한대로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쓰라린 고통을 주고 어려운 시련을 겪게 하셔서라도 우리의 심령을 깨뜨려서 굳어지지 않게 하시고 생명력이 넘치게 하십니다.

당신은 걍팍한 종교인입니까? 아니면 온유하고 부드러운 신앙인입니까?

종교인은 말 그대로 종교인일 뿐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종교인은 여러 종교 중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골라서 믿는 사람이고, 신앙인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종교인은 좋은 게 좋은 거라 말하고, 신앙인은 아닌 것에 대해 분명히 아니라고 말합니다.

종교인은 선행을 강조하지만 신앙인은 복음을 강조합니다.

종교인은 다른 것에서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지만, 신앙인은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종교인은 교인이 많아 지는 것을 부흥이라 말하지만, 신앙인은 악이 심판되어지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남는 것을 부흥이라 말합니다.

종교인은 교회로 사람을 데려 오는 것을 전도라고 말하지만, 신앙인은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전도라고 말합니다.

종교인은 교회건물이 커 가는 것을 기뻐하지만
. 신앙인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종교인은 자기를 위한 하나님을 믿지만, 신앙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자녀 삼으심의 목적임을 믿습니다.

종교인은 목소리로 찬양하려 하지만 신앙인은 신실한 마음으로 찬양합니다.

종교인은 복을 받는 기도를 좋아하지만, 신앙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종교인은 넓고 편한 길을 좋아하지만, 신앙인은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어갑니다.

종교인은 가난한 자에게 빵만 주지만, 신앙인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줍니다.

종교인은 배고프면 먼저 자기 배부터 채우지만, 신앙인은 배고플 때 가난한 자를 먼저 생각합니다.

종교인은 가룟 유다처럼 한치 앞도 보지 못하지만, 신앙인은 바울처럼 복음으로 시대에 비젼을 제시합니다.

종교인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신앙인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종교인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지만, 신앙인은 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종교인은 날이 갈수록 종교 전문가가 되어가지만, 신앙인은 날이 갈수록 삶과 인격이 변하고 삶 속에서 열매를 맺어갑니다.

종교인은 종말을 두려워하지만, 신앙인은 주여~ 어서 오소서! 마라나타 신앙으로 살아갑니다.

종교인에게는 지옥이 예비되어 있지만, 신앙인에게는 천국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종교인입니까? 신앙인입니까?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아는 지식과 경험이 다인 것처럼 교만하게 살았던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걍퍅한 마음으로 판단하고 마음과 귀와 눈을 닫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묵은 땅을 갈고 옛 습관과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리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갈 이유와 힘을 발견하게 하시고, 주님을 노래하며 예배의 기쁨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오래된 신앙으로 마음이 굳어진 종교인으로 머물지 않게 하시고, 참 신앙인으로써 당당하게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매일매일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써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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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탈리아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가 구원받고 예수님을 믿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길을 지나다가 나환자를 만났습니다. 


가서 기도해주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론 전염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더럽다는 마음이 생겨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계속 마음속에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가 나환자를 그냥 지나친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너는 왜 그냥 지나갔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더럽게 느껴져서 그랬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프란시스는 이런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나환자보다 나으냐? 너는 그 나환자보다 더 더럽혀진 죄인이었다. 그런데 내가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했느니라.”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고 그는 발걸음을 돌이켜 쫓아가서 나환자의 손을 붙잡고 키스하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이때부터 프란시스의 놀라운 사랑의 순례가 시작되었고,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유명한 "평화의 기도’입니다. 


🍀평화의 기도 


오 주여, 저를 주님의 평화의 도구로 감아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잘못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게 하소서.


또한 어두운 곳에 주님의 빛을 비취며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전하는 사신이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먼저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먼저 이해하며,

사랑 받기 보다는 먼저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서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우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높고 깊고 넓으며 영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벗어날 곳은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 마음 속에 믿음이 넘쳐납니다. 


믿음이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것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있으면 믿음이 생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고 미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십자가를 품는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용서하고 잊어버리며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계명이며 동시에 삶의 법칙인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일곱 가지 필수 비타민을 소개합니다. 

 

✔비타민 A: Accept (인정하다) 

 

상대방을 고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나와 다르다고 억지로 고치려 들다가는 오히려 관계를 그르치기 쉬우므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같은 방향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비타민 B: Believe (믿다) 

 

사랑은 믿음이라는 비타민을 먹고 큽니다. 반면, 의심은 의심을 먹고 자꾸 커갑니다. 믿음이 없는 사랑은 한계가 있으며 불행과 허무, 상처로 마감하게됩니다. 

 

✔비타민 C: Care (돌보다)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책임지고 먼저 배려하고 돌보게 됩니다. 돌봄은 곧 관심입니다. 기쁘고 행복할 때보다 어렵고 힘들 때에 돌보는 것이 더욱 값진 것입니다.

 

✔비타민 D: Desire (기대하다)

 

서로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잘되길 희망하며 꿈을 키워나가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을 과소평가하지 않고 당신은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며, 상승하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비타민 E: Erase (지워버리다)

 

상대방의 허물과 단점은 빨리 지워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단호히 하고 상대의 실수나 허물에 대해서는 그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사랑은 물론 좋은 인간관계를 하기 어렵고 차차 금이 가다가 결국 헤어지고 맙니다.

 

✔비타민 F: Forgive (용서하다)

 

과거를 언급할수록 현재를 후퇴시키고 사랑도 후진시킵니다. 서로의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용납해주어야 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타민 G: Give (주는 것)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줄수록 넉넉해 지고 더욱 사랑이 돈독해 진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경험하고 있다면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사랑 안에 두 사람은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 용서받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은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나환자보다 더 더러운 죄인을 용서하시고 끝없이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은 채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원한과 미움을 품고 용서하지 못하므로 다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하게 하여 주옵소서. 서로 먼저 사랑하고 서로 먼저 섬기고 서로 먼저 베풀며 살게 하옵소서. 


한없이 높고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의 일곱 가지 필수 비타민을 실천하며 충만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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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어느 중학교의 교사가 교장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승진이 안된것에 대해 불평하며 이렇게 따졌습니다. 


“교장선생님, 제가 이 자리에 몇 년 동안이나 있었는지 아십니까? 무려 25년 동안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승진이 늦죠?” 

 

그랬더니 교장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계산을 잘 못하셨네요. 선생님께서는 그 자리에 1년 밖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1년을 25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네요.” 

 

그리고는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그만큼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옛날 모습 그대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발전이 없었고 25년전 만든 강의 노트 하나로 25년간 버티고 있는 그 선생님의 안일함과 타성을 질책하셨습니다. 


나의 신앙생활은 어떤가요? 


한달 전이나 일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변화와 열정이 없다면 25년이란 경력이 아무 의미가 없듯이,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성경을 많이 알고 직분이 아무리 높다 한 들.. 말씀을 말씀으로 듣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순종하지 못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에 있어 믿음의 본이 되지 못한다면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모습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말씀 앞에 자신의 경력, 지식을 내려놓고 삶의 스타일, 인격이 바뀌는 등 변화와 회개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변화와 열정이 없는 사람, 안일함과 타성에 젖은 사람은 오히려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비난하고, 말씀 선포에 대해 은혜롭네 아니네 불평하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삶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남들 보기에는 오래 신앙 생활했고 봉사도 하고 멋진 직분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더욱 교만하게 만들고 자신을 돌아보거나 회개하지 않게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믿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 욕심만 채우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해서 듣고 해석하기 때문에 영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자기 자신만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것을 수학자가 이야기하면, “네 분수를 알라.”, 국어학자가 말한다면 “네 주제를 알라”, 지리학자가 이야기하면 “네 위치를 알라.”, 경제학자라면 “네 가치를 알라.” 고 말할 것입니다. 


배가 여러 해 동안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굴이나 조개껍데기 같은 것들이 배 밑바닥에 달라붙어서 배의 속도가 느려지고 연료소모도 늘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년에 한번씩은 배 밑창을 드러내고 배 바닥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제거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고 힘이 든다고 해서 이 과정을 생략하면 배를 오래 쓸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알지 못할 병들이 많이 생기는데, 굳어져서 죽어가는 병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간경화증이나 동맥경화증 같은 병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질병으로 몸이 굳어지는 것도 무섭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굳어지는 것은 더 무서운 병입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신앙도 리모델링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은 리모델링 시대입니다. 기존의 것을 헐지 않고 새로 단장하는 것을 리모델링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사람들도 리모델링을 합니다. 피부 관리, 머리 염색 등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여성들도 남성들도 아예 얼굴과 몸을 뜯어고치는 리모델링까지도 합니다. 

 

신앙도 오래 그냥 놔두면 구태의연해지고 타성과 관료주의에 젖게 됩니다. 새롭게 리모델링해야 합니다. 말씀을 회복하고, 예배를 회복하고,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동 없는 예배는 형식입니다. 죽은 예배입니다. 감동 없는 찬송은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 안에 감동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내 안에 나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거나 실수했다고 느낄 때 즉시 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변명하거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회개해야 하나님께 계속 쓰임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내 안에 있는 관료주의, 타성에 젖은 안일함을 버리고, 어떠한 허물이나 죄가 있던지, 어떤 고난이나 갈등이나 시련이 있던지 통회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하는 겸손함으로 구원의 기쁨과 감사를 찬양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오늘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지 못한 채 어린 아이와 같이 습관적인 신앙생활만을 답습해 왔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항상 말씀 앞에 겸손하게 저를 돌아보게 하시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딱딱해진 구습과 영적 타성, 관료주의를 깨뜨려주시옵소서. 


새 영과 새 몸과 새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 저의 삶과 인격이 변화되고 신앙의 본이 되어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게 하소서.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며 세상의 빛된 삶을 살게 하시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영적으로 성장하고 신앙이 성숙되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 앞에 순종함으로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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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5:5~6]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잠언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언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어떤 마부가 당나귀 등에 돌부처를 싣고 길거리를 지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돌부처를 보고 합장 배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당나귀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우러러 경배하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교만해질대로 교만해진 당나귀는 우쭐대며 마부가 가라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갔습니다. 


이에 화가 난 마부는 채찍으로 내려쳤습니다. 갑자기 내려치는 채찍에 깜짝 놀라 뛰는 바람에 당나귀의 등에 있던 돌부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당나귀는 다리를 다쳐 그만 쓸모 없는 나귀가 되었고 결국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당나귀의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내 생각과 내 경험이 다 옳은 것처럼 착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나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공기와 햇볕, 하늘과 물과 땅, 나 자신, 내 자녀들..  그 어느 것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머리털 하나, 세포 하나도 내가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공짜로 주신 이 모든 것을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지 못합니다. 태어나는 시간도, 삶의 기간도, 죽는 시간도 내가 정하지 못합니다. 절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 시한부로 빌려 쓰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증거물들을 바로 눈 앞에 보면서도..  우리의 한시적 눈으로 하나님을 볼수 없다고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억지를 씁니다. 


우리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옵니다. 쉐프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기에 손님들 눈에는 안보입니다. 내 눈앞에 안보인다고 쉐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요리했고 누군가가 창조했기에 간단한 요리라도 우리가 먹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요리는 맛있게 먹으면서 쉐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입니다.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교만은 실로 큰 죄이며, 하나님 나라의 걸림돌입니다. 

 

현대인의 교만은 대체로 네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적 교만입니다. 


과학주의라고 하는 우상이 현대인의 마음 속에 있어 창조의 하나님을 의심하고 무시하는 무서운 죄를 짓게 합니다.  인간이 만든 얕은 지식으로 더 높고 깊은 영적단계인 성경을 증명하려고합니다.

 

둘째는 권력적 교만입니다. 


권력이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한 줄로 믿고 그것이 영원할 줄 큰 소리 치며 살아갑니다. 

 

셋째는 도덕적 교만입니다. 


본인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허물이나 실수는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고ᆢ 남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사와 검사가 되어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넷째는 종교적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죄로 인해 인간은 병들고 모든 관계가 파괴되며 쾌락과 타락으로 망해갑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순간 인간 존재도 함께 부인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교만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잠깐은 살수 있어도 곧 죽을 수밖에 없듯이 하나님을 떠난 교만한 인생은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참혹한 형벌뿐입니다.


[잠언 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영적 교만은 자기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타락한 상태에 대한 인식이 없이 다른 것들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테레사는 이러한 현상을 빛에 비추어진 물이 든 잔에 비교했습니다. 


잔에 담겨 있는 물이 해가 비치지 않을 때는 깨끗하게 보이지만, 해가 비치게 되면 먼지와 불순물이 가득함을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영혼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영적 한센병처럼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죄에 대해 무감각하지만 하나님의 의가 비춰지면 무수히 많은 불순물과 죄들을 보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 뒤로 밀어내고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코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하며 받으려고만 하고 항상 불만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지도자가 되면 권력이 얼만큼 휘둘러지는지 얼마나 강한지를 시험하고자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인도자가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겸손하게 무릎꿇고 기도하는 우리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시편 147:5~6]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겸손한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 아버지, 당나귀처럼 착각 속에 빠져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교만하게 살았던 저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을 살게하시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음을 항상 잊지 않고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인간의 생명과 죽음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부와 귀,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살게 하소서. 


겸손하신 예수님을 더 닮기 원하오니 겸손하게 섬기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고 충성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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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미국 대도시에 가면 JC Penny라는 백화점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 백화점의 설립자는 제이시 페니라는 사람인데, 그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육류사업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사업을 더 확장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호텔 등 큰 업체에 납품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들에게 술이나 뇌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고 결국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심한 재정난을 겪으면서 그의 걱정과 근심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건강이 최고로 악화되면서 페니는 미시간주 배틀크릭에 있는 격리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지치고 낙심한 그에게 바람을 타고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소리 나는 곳을 간신히 찾아갔더니 어떤 작은 건물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뒷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매우 친숙한 찬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그 찬송은 그의 마음속에 가득 찬 염려를 몰아내었고 큰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는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 후에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무한히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 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막노동부터 시작하여 편의점을 열었습니다. 


그는 고객들의 작은 불편함까지 꼼꼼히 살폈고, 어떤 물건이든 고객이 반품하는 것은 받아주었으며, 수익성이 높은 물건이 아니라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직원 5만명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고 대백화점왕이 되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그를 “돈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이 시대에 돈을 수단으로 삼았다”며 극찬하였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의 소유를 선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제이씨 페니 그의 이름의 JC는 Jesus Christ의 약자이며 Penny는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페니를 인도했듯, 모양과 방법은 다르지만 오늘도 하나님은 똑같은 사랑으로 나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는 반복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주님은 이토록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염려는 우리 몸을 상하게 합니다. 염려한다고 나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무익합니다.  


‘염려’라는 단어는 ‘마음을 나눈다’ ‘생각을 가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염려하면 생각이 나누어져서 혼란스럽고, 스트레스에 빠지고, 방황하게 되고,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되고, 잠을 이룰 수 없어 결국은 큰 병이 됩니다. 두통과 위장병, 관절염에 시달리게 됩니다. 


기쁨은 보약이요, 근심은 독약입니다. 


염려는 무의미합니다. 


염려는 불신앙에서 옵니다. 


염려는 믿음의 부족에서 옵니다.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를 입히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인 너희야 말할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조건 하에서도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지 뮐러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고,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채워주심과 돌보심을 믿고 염려를 던져버리십시오.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나의 주님으로 믿고 산다면 최소한 5가지 근심은 해결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의식주..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일하는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열등의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가장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시편 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저주의식.. 


자기 아들을 주시기까지 한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십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불확실한 미래.. 


우리가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만 하면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죽음의 공포.. 


생명은 주께 있는 것이므로 언제 어떤 모양으로 가든지 그곳은 천국임에 틀림없습니다. 


[요한복음 14:1∼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세계적인 권위 있는 연구조사에 의하면 우리의 걱정, 근심 가운데 80%는 일어날 수 없는 쓸데없는 것이며, 12%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고, 오직 8%만이 진정으로 걱정할 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나머지 8%의 걱정, 근심도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8%까지도 하나님께서 대신 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한 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10시간 염려하기보다는 10분 기도하라.” 


정말 염려하는 것이 있다면 엎드려 무릎 꿇고 기도하십시오. 


[시편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이사야 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믿음을 소유하십시요. 


믿음이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문턱을 넘어설 때 절망이 소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어둠이 광명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질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요한복음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무의미하며 불신앙의 산물인 염려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믿음 안에서 기도하게 하옵소서. 


감사로 모든 근심을 이기고 주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온전한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채워주심과 돌보심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구하는 주님나라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2015년의 하반기 첫날인 오늘…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 한 분만으로 행복함을 체험하며 활기차고 기쁘게 시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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