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6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시편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한 젊은이가 큰 뜻을 품고서 복숭아 과수원을 매입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으며 복숭아 재배자로 꼭 성공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꽃이 만발한 복숭아 과수원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다 잘되어가는 듯했으므로 청년은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나무마다 탐스러운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할 무렵 기상이변으로 된서리가 내리고 만 것입니다. 그 모든 수고와 정성이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낙심한 청년은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주에도, 또 그 다음주에도 그는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목사님이 청년에게 찾아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시무룩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교회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애써 키운 복숭아들을 서리를 내려 다 죽게 할 정도로 가혹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목사님은 아무 말 없이 청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네 복숭아들보다 자네를 더 사랑하시네. 물론 그 분은 서리가 내리지 않아야 복숭아들이 잘 자란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하지만 서리 없이는 인간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신다네. 그분의 관심은 사람을 키우는데 있지 복숭아를 키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거든” 


[요한복음 21:15~17]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당하실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 그에게 찾아가신 예수님은 “네가 수제자로서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해?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과거의 잘못에 대해 한마디도 묻거나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앞으로의 큰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고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찬찬히 보며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질문했을까요? 


‘주님을 사랑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어릴 때부터 주님의 말씀 안에서 양육되도록 어린 양들을 먹이라는 것이고,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부정적인 것들과 훼손하는 것들로부터 내 양들을 보호하라는 것이며,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풍성한 말씀의 꼴로 양을 먹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주신 최대의 사명인 ‘양을 먹이는 삶’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면서 “네가 앞으로 얼마나 충성할래? 어떻게 사역을 할 것이며, 힘들어도 사명을 버리지 않을 거냐?”하는 질문을 하지 않고, 그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쓰임받는 귀한 그릇이 되려면 먼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조건은 내 실력이나 능력, 재력이나 학벌이 아닙니다. 오직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입니다. 


이렇듯 주님의 겸손한 성육신의 사랑이 배신자 베드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사랑은 과거의 수치를 이기게 하고 깨진 관계를 회복시켜줍니다. 


우리의 상처와 분노, 힘든 삶의 역경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0:11, 1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사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두 번째 사명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목자에게 양은 내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입니다. 심지어는 내가 낳은 자녀도 내 자녀가 아니라 주님의 자녀입니다. 


모든 소유도 내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미래에는 저주와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됩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아 잠시 맡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놀라운 평안과 신비한 축복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고백을 받은 다음에 바로 양을 먹이라고 하셨을까요? 


결국 ‘예수님 사랑’은 ‘양떼 사랑’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표시는 양떼를 사랑하는 모습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떼 사랑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며, ‘십자가를 지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선언할 때 내 상처도 치유되고, 내 아픔도 치유되고, 내 분노도 사라지고, 내 과거도 치유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3번이나 반복해서 양떼를 먹이라고 하신 것은 이웃 사랑이 쉽지 않음을 잘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다 사랑하겠다고 결심했다가 나중에는 귀찮고 힘들고 실망해서 사랑을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에 미리 단단한 마음을 먹도록 주님은 계속 내 양을 먹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최고의 인격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격입니다. 천하를 얻고도 사람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을 무시하면 자신의 가치도 떨어지고, 하나님의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 중의 관심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을수록 내게 나타나는 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양육할 때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입니다. 자기 자녀가 친구를 무시하는 왕따의 주동자 역할을 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자녀의 그런 모습을 즉시 제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그런 버릇을 고쳐주지 않으면 커서도 그 버릇을 버리기 힘들게 되고, 그때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사람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베드로에게 하셨듯이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어떻게 사랑하고 있느냐? 그것이 진실한 사랑이냐?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삶 속에서 어떤 열매로 나타나고 있느냐?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잘 섬기고 있느냐?’ 


주님의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해 보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사 과거의 그 많은 실수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현재 이 시점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  그 크신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모든 교만, 자아, 아집을 다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라고 겸손한 사랑의 응답을 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그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고 나를 이기고 그리고 최선의 충만한 생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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