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16 신실한 기독교인이 우울증?


[아가서 2: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시편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20년 넘게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온 40대 중반의 사모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마 전,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아무런 의욕도 없이 만사가 괴롭고 귀찮아진 것은 1년 반 전쯤부터였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교인들도 만나기 싫고, 사모로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할 뿐이었습니다. 


그 사모는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깐 잠이 든다 해도 새벽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으며, 지치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교인들에게 들킬까 봐 새벽예배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능력 있다는 기도원에도 몇 번씩 가보았고, 신유 은사를 받은 목사님들로부터 안수기도도 받았지만 거의 변화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초조해졌으며 최근에는 자살에 대한 생각이 자꾸 떠올라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도 우울증에 걸릴까요? 


그렇습니다.  


목사님에게도.. 사모에게도.. 직분이 높은 임직자들에게도 우울증은 비켜가지 않습니다. 


의학계 정설에 따르면, 우울증은 국가나 종교 그리고 사회 경제적인 수준에 관계없이 어느 집단에서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 나이팅게일, 미국의 케네디 하원 의원,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도 중증 우울증 환자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울장애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울적함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데서 오는 슬픔이나 비탄과는 달리, 상황 변화나 기간 경과에도 별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세상이 온통 우울이라는 색깔로 어둡게 칠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염세적으로 보입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30대 김집사는 요즘, 평소에 위로와 기쁨을 주던 성경 말씀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관심이 없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김 집사에게 구역장이 “집사님, 힘내세요.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했죠. 주님 안에서 이겨 보세요. 주님 안에서 이길 수 있어요”라고 진심으로 조언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 말씀에 위로를 받았을 텐데, 우울증을 앓게 되자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도 알아요. 내가 뭐 바보인 줄 아세요? 구역장님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말씀을 해요? 내 입장이 되어 보세요. 그런 말씀 못하실 거예요.”

 

기독교 상담가들은 ‘믿음 좋은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수 없다’는 생각은 성경적이라기보다, 기복주의적인 신앙이나 균형을 잃어버린 잘못된 성경 해석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복주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은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하며 모든 일에 성공해야 한다는 신앙관입니다. 


기복주의적 신앙관은 어떤 실패나 대인관계로 인한 갈등, 건강이나 정서적 고통으로 인한 우울증도 전적으로 영적인 문제이므로 회개, 기도, 말씀, 축사 등 오로지 영적 활동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영적 이외의 접근방법은 믿음이 부족하거나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하여 결국 우울증을 더 악화시킵니다. 

 

연세대 의대 이만홍 교수는 그리스도인의 우울증에 대해 “그 원인을 생물학적, 심리사회학적으로 다양하게 이해하려는 노력과 더불어서 영적인 여러 측면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이 좋은 인물임에도 우울증으로 고통 받은 인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욥과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과 자식을 잃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지만 지속되는 시험 가운데 자신의 고통을 탄식했습니다. 


[욥기 2:24~26]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기 7: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 이니이다

 

엘리야도 열왕기상 18장에서 화려한 믿음의 승리를 보여 주었으나 19장에서는 끈질긴 이세벨의 위협에 쫓겨 로뎀나무 아래 앉아 식음을 전폐하고 죽기를 기도했습니다.  


[열왕기상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일생을 우울증과 씨름했습니다. 


1527년에 쓴 그의 일기에서, 그는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일주일 이상을 죽음과 지옥의 문턱에 서 있었던 것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19세기 부흥운동의 불을 지핀 설교자 촬스 스펄전도 중증 우울증으로 1년에 두세 달씩 강단을 비워야 했습니다. 


1866년 그는 설교 도중 회중에게 “저는 아주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여러분 중에서는 어느 누구도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극도의 비참한 고통을 겪지 않기 바랍니다”라며 자신의 우울증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많은 인물들의 사례를 통하여 신실한 신앙인의 경우도 우울증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고혈압, 당뇨와 함께 세계 3대 만성 질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국가, 지역의 구분 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우울증…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 반갑지 않은 질병인 이 우울증을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치료해야 할까요? 


오늘 하루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며 좋은 치료 방법을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일 계속) 


♣우리의 치유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육체적 정시적 영적으로 신음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치유의 손길로 저를 만지시고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과 슬픔, 혼돈과 침체로 인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저 스스로를 괴롭히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마저도 파괴하고, 삶의 기쁨과 의지마저 잃고 있는 연약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저의 내면의 상처와 아픔과 우울을 치유해주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으로 소망을 주시고, 저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진정으로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저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생각하며 다시 일수날수 있도록 분별력과 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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