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2016년 9월 23일 “3분의 기적”
(하루 3분의 말씀 묵상을 통해 당신의 삶에 기적을 체험하세요!)
제목: 거룩한 사랑의 낭비
(오늘의 묵상은 다락방 교재 17과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나이 들어 기독교인이 된 어떤 유복한 할머니가 손녀와 함께 도심의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거지가 그들에게 다가와 구걸을 하며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거지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 다음 골목에서는 구세군의 모금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었습니다.
할머니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손녀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기독교인이 되신 후 잃어버린 게 정말 많으시죠?"
그러자 할머니는 손녀를 바라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암, 꽤 많은 것을 잃어 버렸지. 조급한 성격이라든가 남을 헐뜯는 버릇, 아무 의미도 없는 취미나 사회활동에 시간을 허비하는 생활태도 등이 내게서 없어졌으니까. 그것뿐인 줄 아니?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마음까지도 내게서 사라져 버렸으니 참 많이 잃어버린 셈이지."
“그치만 할머니, 세상은 얼마나 놀러 갈 곳이 많고 즐길 일이 많은데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하루 종일 예배 드리고 봉사하시고… 거기다 아까운 돈까지 헌금하시고. 그건 너무 낭비아닌가요? 할머니도 이제 사고 싶은거 먹고 싶은거 마음껏 하시며 인생을 즐겁게 사세요”
“네 눈에는 이 할미가 낭비하는 것으로 보이니? 그런데 실은 정반대란다. 그동안은 나만을 위해 살았기에 전혀 행복하고 기쁘지 않았지. 보람도 없었고..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니 지금은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기쁘고 정말 행복하단다” 🌱
[디모데후서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세상 사람들은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한다고 합니다.
땀 흘려 열심히 번 물질을 아낌없이 헌금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질을 낭비한다고 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생면부지의 척박한 땅에 가서 목숨을 걸고 일생을 바치는 선교사님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낭비 중의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주님이 보시기에도 그것이 낭비로 보일까요?
계산적이고 생산성에만 붙들려 있는 우리의 세상적 관점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주님의 관점에서는 가장 고귀하고 쓰임받는 거룩한 사랑입니다.
성경에는 세상적 가치와는 전혀 다른 사랑을 한 어느 여인의 헌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한복음 12:1~3]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그 여인은 바로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진정 사랑했기에 전 재산에 해당하는 삼백 데나리온의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당시 일일 근로자의 하루 품삯이라고 하니 삼백 데나리온은 일 년 품삯에 해당하고, 현재 가치로 환산한다면 2,500~3,000만원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비싸고 결혼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자신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을 위해 정성껏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좋았을 것이라며 쓸데없는 낭비이고 가치없는 행동이라고 그녀를 비난했습니다.
[요한복음 12:4~5]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그녀의 행동을 비난한 사람은 가롯 유다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3년간 같이 지낸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심정을 몰랐고 분개했습니다.
[마태복음 26:7~9]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님은 곧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아셨고 장례를 준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기에… 너희를 살리는 길은 이 길뿐이기에…… 너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기에… 이 길이 아니면 너희가 죽게 되기에….” 주님은 한 여인의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면서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기 판단과 가치기준, 자기 나름의 신앙의 패러다임과 자기 프레임에 갇혀서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고 좋은 말 같지만 실제는 인색하고 계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효율성과 합리성 측면에서 옳게 보이는 제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낭비처럼 보이는 마리아의 헌신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칭찬하시고 온 세상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녀의 감사행위로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녀는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로 오라버니를 살려 주신 예수님에게 대한 감사의 뜻을 표현하고 싶어서 잔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잔치 자리에서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아마도 잔치를 베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그 행동은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은 데서 비롯된 감사의 행동이요 참된 헌신이었습니다.
요즘은 은혜를 잊어버린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냥 우연일 뿐,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생긴 당연한 결과라며 은혜도 잊고 감사도 잊고 오히려 불평하고 원망하며 지내곤 합니다.
참된 헌신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헌신은 사랑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적의 때’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지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에 이미 아셨기에 죽기 전 마리아의 나드 향유를 부어드림에 기뻐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도 감사를 표현해야 할 때, 사과를 해야 할 때, 용서를 구해야 할 때.. 그 때를 놓쳐서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즉시 순종하고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마리아는 ‘계산을 초월’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비싼 나드 향유 옥합을 몽땅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한두 방울만 뿌려도 온 방안에 향기가 가득할 터인데 몽땅 주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주님의 뜻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계산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산을 초월한, 지각에 뛰어난 축복을 받습니다.
마리아는 ‘진실된 사랑’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지만 복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헌금하고 감사한다면 놀부가 제비 다리를 꺾고 싸매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리아는 받은바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감사에 사랑이 어우러질 때 훌륭한 감사와 찬된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마리아는 ‘겸손하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렸다는 것은 자기를 끝까지 낮추고 겸손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많은 헌금을 드렸을지라도 그것을 기억하거나 생색내며 어떤 결과를 기대하면서 교만한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최선을 다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힘을 다하여 남김없이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정성을 보시는 분입니다. 물질의 양이 많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질의 양은 적어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드릴 때는 너무나 인색하게 계산을 하며 드립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연이거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었고 주님도 이미 아셨습니다.
기독교는 윤리가 아니라 진리입니다. 생명의 진리에 바탕을 둔 사회정의가 아니면, 그것은 21세기판 가롯 유다와 제자들입니다.
거룩한 사랑의 낭비는 세상적인 계산법을 넘어서서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거룩한 사랑의 낭비의 원형은 바로 예수님이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투성이인 우리를 속죄하기 위해 하나님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아마도 사탄은 ‘저 부패한 인생들이 뭐길래 당신의 아들을 희생하느냐’.며,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없는데도 그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낭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고귀한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최고의 거룩한 희생이요, 최고의 거룩한 낭비인 것 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적, 계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거룩한 사랑의 낭비를 삶 속에서 실천하며 예수님의 생명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마리아가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전 재산에 해당하는 향유를 주님께 드렸듯이 온전한 헌신과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즉각적인 순종과 실천, 계산을 초월한 사랑과 감사, 겸손함으로 온 맘과 생명과 뜻을 다하여 존귀하신 주님만을 사랑하고, 섬김과 헌신을 실천하게 하소서.
나는 다르다고 자만했던 우월 의식과 자부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위해 한결같이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21세기판 가롯 유다가 되지 않고 계산적 합리적 세상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거룩한 사랑의 낭비를 삶속에서 실천하며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생활 > 매일 3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09.26 (0) | 2016.10.03 |
---|---|
2016.09.24 (0) | 2016.10.03 |
2106.09.22 (0) | 2016.10.03 |
2016.09.21 (0) | 2016.10.03 |
2016.09.20 (0) | 2016.10.03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