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ory/Domestic Travel

2015.01.09~10 서울 여행 part. 2

Inseok William Seo 2015. 1. 13. 01:16

아침이 되고 우리는 창덕궁&창경궁 구경을 위해 숙소에서 5분도 되지 않는 그곳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5분정도 걸어가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창덕궁 정문이 바로 앞에 있다.



길을 건너서 표를 끊고 (1인당 3,000원의 입장료)


창덕궁 구경에 나섰다.


위 사진은 돈화문 이라고 불린다.



정문을 통해 입장하니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창덕궁과 창경국 맵하고 방향표지판 이다.



이곳 나무들도 세월을 머금어서 그런지 너무 이쁘다.



:]



우리는 인정전으로 가기 위해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을 향해 길을 나섰다.



이곳이 바로 인정전 이라는 곳이다.

인정전은 참 사연이 많은 건물이다.


인정전에 대한 정보를 찾던 도중 알게된 이야기다. 


 태종 이방원이 거처할 이궁()으로 창덕궁을 건립하면서 1405년에 완공되었다. 태종 때에는 정면 3칸의 작은 전각이었으나 1418년에 규모가 큰 건물로 고쳐지었다. 인정전(殿)은 인자한 정치를 펼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창덕궁의 정전(殿)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화재로 전소되었고 선조 때 복구공사가 시작되어 광해군()이 즉위하던 1607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이후 인정전은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정무를 행하였고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건물이 되었다. 하지만 창덕궁은 여러차례 화재로 시달렸는데 1803년 선정전에서 불이나 인정전까지 전소되고 말았다. 이듬해 1804년(순조 4) 다시 건립되었다. 인정전의 앞 마당에는 박석()을 깔았고 품계석을 설치하여 조선 왕조의 법전으로 역할했다. 건물의 방향은 남향이고 인정문과 함께 회랑으로 둘러싸여 일곽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임진왜란때 한 번 불에 타서 복구했고 또 다시 1803년 선정전에서 불이나 인정전까지 전소되었다고 한다. 1804년 다시 건립 되었다.

여러차례 화재로 시달린 인정전은 복구되고 복구되는 시간을 거쳐 오늘 현재까지 유지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인정전을 지나 다른 곳도 구경하는데....이곳은 희정당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유리창문과 천장에는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며진 곳이라고 한다. 보물 제 8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는 선정전이고 복도각이 설치되어 있다.

선정전은 임금의 집무실로 쓰인 곳이라고 한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등 각종 컨퍼런스가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여기는 대조원 일원이다.



여기는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왔다갔다하는 함양문이다.

창경궁은 별도로 1,000원을 더 받는다.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넘어오자 언덕 아래로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귀용이와 나는 멋진 광경에 입이 쩍 벌어졌다



계단을 내려오자 이 것이 보였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여름에 물이 차있고 여기다가 동전을 던져서 소원을 비는(?)거 같았다.

겨울인데 물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동전을 하나 둘씩 던졌다.



이곳은 통명전 이다.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양화당 이었던거 같다.



이곳은 좌측은 경춘정, 우측은 환경정이라고 한다.



이곳의 이름은 명정전이라고 한다.

조선 성종 15년 (1484年)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 명정전이 세워졌다고 한다. 

두 팔벌리고 있는 친구의 양쪽으로 있는 돌은 24개의 품계석이라고 한다.


명정전을 구경 하고 나서 우리는 명정문을 통해 창경궁을 나가게 되었다.



여기는 홍화문(정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구경하고 올 수 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