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eok William Seo 2016. 11. 28. 08:32
2016년 11월 14일 “3분의 기적”
(하루 3분의 말씀 묵상을 통해 당신의 삶에 기적을 체험하세요!)

제목: 아버지의 짝사랑

[여호수아 1:9]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미국 원주민들의 풍속 중에 소년이 성인으로 될 때 거치게 하는 훈련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훈련 과정이 있는데 훈련의 마지막은 혼자 어둠 속에서 무서움을 참아내게 하여 인내력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아주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장작으로 불을 피워주고는 "아침이 될 때까지 이 불을 꺼지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껴야만 겨우 아침까지 필 만큼의 장작을 준 다음 밤이 새도록 혼자 지내게 합니다. 밤이 되면 맹수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쳐 소리가 날 때마다 아이는 깜짝깜짝 놀라며 이렇게 무섭고 위험한 곳에 혼자 버려두고 간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아이는 밤에 혹시 맹수가 나올까 봐 무서워서 불을 열심히 피웁니다. 조그마한 소리가 들려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그 어두움, 그 무서움 속에서 아이는 참고 인내하는 것을 배웁니다.

이제 아침이 밝아옵니다. 그런데 저 나무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납니다.

깜짝 놀라서 보니 그곳에는 아주 키 큰 어른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알고 보니 밤새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아들을 지켜보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만 고통을 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밤새 고통을 당하면서 그 아들이 인내하는 모습, 어른으로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지켜주고 계셨습니다.

[신명기 31:23] ~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심정이자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어렸을 적 짝사랑을 해보신 적 있으시지요? 나의 사랑을 몰라줬던 야속한 사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애써 외면했던 사람.. 

그런데 평생 나를 짝사랑하고 나와 함께 하며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어리석은 우리는 그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지도 못하고 내 눈앞에 나타나거나 그 사랑을 증명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예수님은 나를 향한 사랑으로 나와 함께 하십니다.

밤새 주무시지도 않고 나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나의 아픔과 외로움에 함께 울며 내 눈물을 닦아주고 계십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을 떠나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가 다시 돌아온 아들 이야기..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챙겨 자유와 쾌락을 찾아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다 낭비하고 흉년까지 들자 어느 순간 스스로 돌이켜 정신을 차렸습니다.

돼지 우리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돼지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안주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수치스럽고 쓰디쓴 실패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만약 탕자가 자기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 채 주저앉아 버렸다면.. 헛된 자존심과 죄책감때문에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는 영영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비로소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탕자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까요?

바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사랑 대신 무관심과 냉대를 받았다면 차라리 돼지 우리에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간섭 받고 구속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집이 가장 안전한 고 따뜻한 곳이요, 고귀한 자유가 있는 곳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뀝니다. 탕자는 돼지우리에서 과거의 실수나 죄책감,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했고 아버지가 계신 집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돼지 우리를 떠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이 있는 곳을 가야 합니다.

탕자인 아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뻐하며 뛰어나와 아들을 맞았고 목을 안고 입맞춤을 했습니다.

유산까지 챙겨 집을 나간 아들에 대한 원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집에 돌아온 아들이 기특하고 반가울 뿐입니다. 아버지는 탕자인 아들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를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려면 회개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내하시며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며, 그분의 자녀인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을 나누기 위해 존재합니다.

첫째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재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용서하고 용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동생을 위해 좋은 옷과 가락지 신발도 모자라 잔치까지 벌리는 아버지가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동생에 대한 질투심과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과 원망으로 마음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첫째 아들의 마음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일서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성품을 가지려면 용납하지 못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받아 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주는 사람, 그것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할 때 막힌 담이 무너지고 꼬인 일들이 풀립니다. 사랑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불편하고 삶이 불행합니다.

첫째 아들은 “무엇이 옳은가”에 치우쳐 동생의 실수와 잘못에 집착했고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고 비판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과의 관계를 중시했습니다.

[누가복음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마음을 잘못 다스리면 영적으로 병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사람과 같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돼지우리를 떠나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 거할 때 모든 것을 품고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부모의 짝사랑을 외면하는 사춘기 자녀처럼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짝사랑을 외면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아버지의 심정을 모르고 마음대로 살았던 많은 태신자들이 이제는 아버지 안에서 품위있는 삶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시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아낌없이 주는 사랑, 용납할수 없는 것도 용납하는 무한한 사랑을 배워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무시한채 내 마음대로 살다가 영원한 샘명의 주인이시자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허무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헛된 것을 좇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자유와 참기쁨 참만족을 누리며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 거하며 살게 하소서.

집 나간 탕자가 아버지 품에 돌아왔을때 누렸던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과 풍성함을 우리 사랑하는 태신자들도  누리게 하소서.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중보기도하게 하시고, 둘째 아들을 탓하거나 꾸짖지 않았던 아버지처럼 그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 따지기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자비로운 자가 되어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